바람의 섬 제주 서귀포에 소년이 살았다. 태풍에 무너진 돌담과 지붕을 날린 집을 숱하게 목격했다. 골목길을 걸어나가지 못한 적도 많다. 이 시련의 기억을 배경으로 그는 바람 가운데로 걸어갔다. 바람을 공부해 교수가 된 뒤 국내 첫 '바람공학' 연구소를 세웠다. 조강표(43) 원광대 건축학부 교수가 새만금을 마주한 전북 김제시 청하면 동지산리 야산에 20일 CKP풍공학연구소를 차린다.

"대도시에 50층 넘는 고층빌딩이 속속 들어서고 있어요. 대공간(大空間) 건축물들이 안전하게 바람과 소통케 하면서 도시 환경에 끼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기술 노하우를 우리는 축적하지 못했습니다."

풍공학연구소는 정부가 오는 4월 1일부터 고층건물과 대공간 건축물의 설계기준에 풍하중(風荷重)을 반영하기로 하면서 때맞춰 설립됐다. 그간 국내 고층건물과 장대(長大)교량, 대형 경기장 등은 설계에 바람의 영향을 반영해왔으나 그 기준을 두지 않았고 기준 적용을 의무화하지도 않았다. 고층건물이 도시 바람에 주는 영향은 고려되지 않았다.

"2003년 9월 12일 태풍 매미가 몰아쳤을 때 부산 바닷가 아파트 단지에선 앞쪽은 멀쩡한데 안쪽 동의 유리창들이 깨졌어요. 태풍이 앞 건물을 비켜 갈라지면서 뒷동에 머물던 공기가 진공 상태의 앞 동을 향해 몰아친 거지요."

조강표 CKP풍공학연구소장이 바람이 건축물 등에 미치는 영향을 계측하기 위한 풍 동의 하부 설비들을 소개하고 있다.

연구소의 핵심시설은 3층 높이에 내부가 도넛 모습으로 세워진 풍동(風洞·wind tunnel). 전체 길이 102m로 바람을 만들어 통로를 돌게 하며 그 압력이 대형 구조물과 주변 지형지물 미니어처에 미치는 영향을 실측한다. 바람이 바뀌거나 멈추면서 생기는 주변 대기오염 등 고층건물과 도시환경 사이 상호작용도 밝힌다.

실측된 정보는 설계에 반영돼 바람 압력을 줄이고 건물이 도시 바람길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다. 신·재생에너지원으로서 풍력발전단지의 적지를 고르고 가동 효율을 높이는 일도 연구 과제다.

"도시 바람길을 가꾸면 에너지 소비도 줄입니다. 도쿄의 경우 냉방으로 도시 전체 온도를 1도 낮추는 데 원자력발전소 2기의 전력이 소모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습니다."

그는 "지구온난화로 갈수록 바람이 강해지고 속도와 방향도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태풍 매미의 부산과 통영에서의 평균 초속은 각각 26.1~30.8m였으나, 평균 초속 각 40~35m에 맞춰 설계된 부산 아시아드경기장 지붕과 통영의 송전탑 2기가 무너지기도 했다.

그는 "지형지물이 빚어내는 순간 최대풍속 등이 고려되지 않았던 것"이라며 "안전을 위해 도시마다 바람지도(wind map)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85학번으로 성균관대 공과대를 졸업한 그는 어릴 적 많이 본 바람을 공부하기 위해 1993년 풍공학을 이끌고 있는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유학길에 나섰다. 첫 1년6개월 동안 건물 청소원으로 학비를 버는 등 고생 끝에 5년 만에 이 분야 국내 첫 박사가 됐다.

일본미국의 대학 연구원을 거쳐 2002년 원광대 교수로 안착한 그에게 연구소 설립은 모험이고 도전이었다. 사재를 털고 기술보증기금의 보증으로 은행빚 10억원까지 냈다. 그는 국내 바람공학 개척자로서 풍동과 함께 풍압·풍력·풍진동·대기오염 등 실측장비 모두 자신이 설계했다. 연구소 공사비를 줄이기 위해 종합건설면허를 받고 중장비와 인력을 불러 직접 시공했다.

"한국의 바람을 실측, 우리 지형에 맞는 도시 및 대형건축물 설계기준을 확보하는 일이 우선 과제입니다." 조 교수는 "태풍에 구조물이 무너지면 자연재해로 여겨 왔지만 앞으로 과학기술 세계에서는 인재(人災)가 된다"고 말했다. 가까운 시일 내 도시에서 일조권 못지않게 풍환경권도 존중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연구소의 기치는 바람 길들이기(taming the wind)다. 그는 "바람을 다스리는 기술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탄소배출을 줄여 녹색 성장에도 일조할 것"이라고 했다. 연구소는 새만금 미래도시와 풍력단지 조성을 위해 그 근거리에서 풍공학을 적용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