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많은 대학이 입학사정관제에 의한 입학전형을 도입하고 있다. 2008년 10개 대학에서 2009년에는 40개 대학으로 늘어났고, 대학별로 입학사정관제를 통한 학생선발 규모도 대폭 확대되고 있다. 차제에 선진국형 입학사정관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해 대학 교육은 물론 파행적인 초·중등 교육과정을 정상화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은 물론 정부, 고교, 교사, 학생, 학부모, 언론 등 여러 관련 주체들의 사고 전환과 적극적 호응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입학사정관을 활용한 입학전형은 객관적으로 나타나는 점수로 지원자들의 순위를 일렬로 세우는 기존의 방식을 탈피해, 여러 명의 입학사정관이 지원자 한명 한명의 다양한 전형요소들을 정량적, 정성적으로 파악하는 전형 방식이기 때문에 많은 인력, 시간, 비용이 소요된다.

그럼에도 미국의 명문 대학들은 많게는 100명이 넘는 입학사정관을 두고 이런 번거로운 선발방식을 고수해 오고 있다. 거기에는 학생 재능의 다양성과 이를 개별적으로 판단 선별하는 방식에 대한 오랜 경험과 그 효용성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양한 성장 배경, 재능, 잠재력, 관심의 폭을 갖춘 학생들은, 교수로부터보다 오히려 학생집단 내의 생활을 통해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을 습득하게 되고,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덕목을 갖춰 가게 된다.

대학이 건학이념과 교육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학생선발에서 수월성도 중요하겠지만, 학생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여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 입학사정관제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으로서 서구 대학에서 오랜 시간을 거쳐 정착됐다.

이제 본격적 시행을 앞둔 입학사정관제의 조기 정착과 확대 발전은 우리나라 초·중등 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에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본래의 취지를 잘 살릴 수만 있으면 학생들이 시험 점수 몇점 올리기 위해 사교육에 매달리는 안타까운 현실이 극복되고, 각자에게 잠재된 재능과 관심에 따라 다양한 방과 후 취미활동과 봉사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대학을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대학은 교과성적 순으로 학생을 뽑아 대학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가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 큰일을 할 수 있는 잠재력 있는 인재를 찾아내 그가 가진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과 철저한 학사관리에 더 큰 관심과 투자를 기울여야 한다.

한편 수험생, 학부모, 언론 등에서도 입학사정관제를 단순히 대학이 지금까지 정부가 고수해 온 삼불정책을 피해가기 위한 방편으로만 보는 시각을 떠나 그 기본 취지가 구현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특히 입학사정관제는 그 특성상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개연성이 높기 때문에 대학마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배전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최근 일부 학교의 성적조작으로, 공교육의 정상화를 통해 사교육을 줄여보자는 본래의 취지가 크게 훼손된 초·중·고교 일부 학년에 대한 전국단위의 학력측정 사안에서 보았듯이,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사전에 전형요소를 충분히 공개하고 최종 선발과정에서 부정이 개입되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정부는 대학들의 입학사정관제 도입이 확대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재정적 지원과 함께 관련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주는 한편, 철저한 감독과 사후 관리에 힘써야 할 것이다.

포스텍은 2010학년도부터 모집정원 300명 전체를 입학사정관제로 선발한다. 전형 프로세스의 수립에서부터 합격자의 결정 방식에 이르기까지 고민스럽지 않은 부분이 없다. 학교 교과활동과 시험 준비에만 매달리는 학생들이 대다수인 우리 현실에서 잠재된 재능을 다면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좋은 제도를 통해 포스텍의 건학 이념과 교육 프로그램에 적합한 인재를 선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이런 시도가 궁극적으로 우리나라 공교육 정상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