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아파트 점검이 일단 끝난 듯하오나 장마가 지나고 월동에 앞서서 다시 한 번 전반적인 점검이 있어야만 월동에 념여(염려란 뜻)가 없을 듯합니다.”(1970년 9월 양택식 서울시장에게 보낸 편지)

중앙SUNDAY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각계각층에 보낸 서한 20여 통을 입수해 3월 1일자로 보도했다고 중앙일보가 2일 보도했다.

이 편지들은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와 고 민관식 문교부 장관 유족, 박태준 전 총리, 김용환 전 재무부 장관 등이 소장하고 있던 것들이다.

이 신문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서찰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했다. 정확한 분량을 추산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측근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상당한 분량의 친필 서신이 각계에 전달됐다.

대통령의 편지는 양지·음지를 가리지 않고 각계각층에 전해졌다. 박 전 대통령에게 친필 서신은 절대 권력자의 의지와 관심을 대내외에 천명하며 파워 엘리트들을 장악하는 강력한 리더십의 수단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대구사범학교 시절 배운 글씨에 서예가 소전 손재형 선생의 지도를 받아 독특한 서법을 구사했다. 주변에선 “글씨에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해 살기(殺氣)마저 비친다”며 ‘사령관체’라고 부르기도 했다. 김용환 전 장관은 “박 전 대통령 열정의 20%가 계획 수립에 쓰였다면, 나머지 80%는 실천하는 데 사용됐으며 편지는 매우 유효한 수단이었다”고 말했다고 중앙일보는 전했다.

78년 4월 28일 박기석 당시 도로공사 사장에게 보낸 편지는 박정희식 치밀함의 정수를 보여 준다. “우리나라 고속도로에 관한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하여 10주년이 되는 1980년 7월 7일에 발간을 목표로 지금부터 그 자료를 수집 정리하도록 하시오.…그렇게 하자면 명(明) 1979년 말까지는 일반 원고가 대략 완료되어야….”

형식적인 행정을 질타하는 경고성 서한도 보인다. 한 교통부 장관에게 보낸 서신은 신랄하다. “부산 수영공항 사무소 내부시설의 유지관리 상태가 지극히 불량합니다.…책임자들이 전연 관심이 없거나 태만하다고밖에 볼 수 없을 정도로 기(其) 상태가 좋지 못합니다. 일례를 든다면 화장실의 청소가 되어 있지 않거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나 소외돼 있거나 힘들게 사는 서민들에게도 편지는 보내졌다. 김만제 전 경제부총리는 “잘나가는 사람보다는 변방으로 물러났던 사람을 많이 챙겼다”고 회고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반혁명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장도영 전 육군참모총장,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곤욕을 치른 김연준 한양대 창립자 등이 이런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대통령 이전에 그는 아버지였다. 막내아들 생일을 축하한 75년 12월 15일 편지엔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담겨 있다.

“아버지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 지만이에게! 우리 지만이의 17회 생일을 충심으로 축하한다. 명년은 고3에 진학하게 되고 또 대학입시 준비에 전력을 경주해야 할 해인 만큼 더욱더 몸을 튼튼하게 하고…너의 어머니께서도 오늘 먼-나라에서 지만이의 생일을 축하하고 아버지와 꼭 같은 당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느니라. 우리 지만이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