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서울대 국사학과를 정년 퇴임하는 이태진 교수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의 현대사 서술은 교과서의 선을 넘었다"며 "문구 수정은 별 의미가 없고 대한민국 역사교과서를 다시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부의 교과서 수정 요구에 대해 일부 역사관련 학회가 성명서를 냈던 것은 결과적으로 좌편향 교과서를 두둔한 것으로 학계에 대한 국민 신뢰를 떨어뜨렸다"며 "역사학계가 교과서 좌편향을 지적하지 않은 것은 책임회피"라고 했다.

용기 있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서울대 국사학과 학과장과 인문대학장, 국내 최대 역사연구 단체인 역사학회 회장을 지내며 국사학계의 중심에서 활동해 온 학자다. 그러기에 우리 역사교과서와 역사학계의 현실에 대한 그의 진단은 개인 의견을 넘어 그동안 정치적 이념적 편 가르기에 연루되길 꺼려 목소리를 아껴온 양식 있는 역사학자들의 의사표시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문제가 된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교육부의 수정 작업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망가뜨리고 북한 정권을 받들어 모시는 '반제 민족해방' 사관(史觀)의 기둥과 대들보는 그대로 놔둔 채 '공출(供出)'을 '미곡 수출', '무장유격대'를 '좌익 무장유격대'로 고치는 식으로 기왓장 몇 개를 갈고는 '제 할 일 끝났다'고 손을 털어 버렸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해 "근본적으로 역사 교과서를 다시 쓰라"고 주문한 것이다.

이 교수의 발언 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역사학계의 책임'을 말한 부분이다. 좌편향으로 왜곡된 근·현대사 교과서를 수정하자는 여론을 모으고 이 운동을 밀고 나간 것은 국사학자가 아니라 정치학·경제학·사회학을 전공한 사회과학자들이었다. 그런데도 한국사연구회 등 21개 역사관련 학회들은 작년 10월 정부가 교과서 수정 방침을 내놓자 좌편향 학자들에 휘둘려 그들의 눈치를 보며 "역사교육의 자율성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니 "역사교육은 역사학계에 맡기라"는 식의 시대착오적 영토의식에 매달리는 부끄러운 모습만 보였다. 이 교수는 이들에 대해 "교육은 학회의 의견 수렴을 통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국가 입장에서, 국민 입장에서 상식선에 어긋나지 않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일침을 놨다.

이 교수는 "좌편향 역사관을 지닌 제자들을 (그 생각을 지닌 채) 학교에서 그대로 떠나 보낸 것에 대해 회한(悔恨)이 많다"고 했다. 80년대에 대학과 대학원을 나와 지금 교수가 되고 학회 중추로 활동하는 역사학자 중에는 여전히 좌파혁명적 시각을 버리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 교수는 이들의 가장 큰 잘못은 "역사학을 정치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 "근대사에서도 민중봉기만 뽑아내고 대한제국이나 개화기 역사는 무시한다"고 이 교수는 진단했다. 이들의 이런 잘못된 역사관은 전교조의 정치 투쟁,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에 그대로 옮겨져 자라나는 세대까지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역사학계는 지금이라도 귀를 열고 이 교수의 고언(苦言)을 받아들여 개방적이고 균형 있는 사관으로 역사교과서를 다시 써 이 나라와 역사학계의 땅에 떨어진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 그러려면 '좌편향'을 '좌편향'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학자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