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추적60분 '안궁우황환의 실체'편 방영모습 캡쳐.

중금속이 든 한약을 먹고 부작용을 겪은 어린이 가족에게 약을 제조해 판매한 약사가 치료비를 물어줘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8부(이병로 부장판사)는 김모 어린이 가족이 약사 K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23일 “K씨는 원고 가족에게 8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K 씨는 전문 지식이 없으면서 주사, 웅황 등 중금속이 과다하게 들어있는 안궁우황환을 팔아 이를 먹은 어린이를 중금속에 중독되게 하고 항경련제를 투약하지 않게 한 과실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해 어린이가 선천적으로 간질 증세가 있었던 점이 현재의 몸 상태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 K 씨의 책임 비율을 25%로 제한했다. 이에 앞서 K씨는 검찰에 의해 형사기소돼 최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됐다.

피해 어린이 김모(5)양은 2004년 4월 태어난 직후부터 간질 증세를 보이는 ‘오타하라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앓았다. 뇌 발달이 제대로 안 돼 반복적으로 발작과 경기를 일으키는 병이었다.

경련 증세가 끊이지 않아 여러 번 병원에 입원했지만 경련을 멈추게 하는 약을 먹어도 병세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자지러지는 아기를 보며 엄마의 마음은 무너졌다. 약국을 찾은 엄마에게 약사 K씨는 경기에 용하다는 환약을 지어줬다. 경기는 거짓말처럼 멈췄다.

하지만 전에 없던 설사 증세가 나타나는 등 부작용이 생겼다. 다시 찾아가자 K씨는 “열을 빼는 과정”이라며 그해 11월까지 넉 달 동안 안궁우황환 77환을 더 팔았다.

결국 이 어린이는 폐렴 등 다른 증세까지 찾아와 병원으로 실려갔다. 진단은 '수은 중독'. 약사가 지어준 약은 수은과 비소가 다량 함유된 '안궁우황환'이란 약이었다.

이 약의 주요 성분인 주사는 황화수은을 96% 이상, 웅황은 이황산비소를 90% 이상 포함하는 등 중금속을 다량 함유한 물질이다. 식약청의 허가를 받은 약이 아니어서 국내에서는 제조 판매가 금지돼 있었다. 하지만 간질과 당뇨, 혈액순환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암암리에 팔렸다.

병원 의료진은 김양이 먹었던 약 성분 분석을 검사기관에 의뢰했는데 수은은 1만∼1만8000ppm, 비소는 1만4000∼3만ppm이 검출됐다.

이 사건은 KBS '추적 60분'에 보도되는 등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피해 어린이 목에는 여러 개의 주사 구멍이 있고, 코에서 위까지 연결된 호스로 분유를 먹었다. 생후 8개월 때 쓰러진 이후 현재도 병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 어린이는 온몸이 거의 마비된 상태로 심한 호흡부전을 겪고 있다.

당시 약을 제조한 약사는 "'한약방제학'에 나와 있는 대로 약을 지었기 때문에 잘못이 없다"며 "또 안궁우황환에 들어있는 수은은 황화수은이고 불용성이라 인체에 흡수되지 않는다"고 자신의 책임을 부인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식품의약품안전청은 2008년 생약에 든 주사와 웅황 등 광물성 생약의 중금속 기준을 마련했다. 식약청이 뒤늦게 마련한 기준치로 볼 때 피해 어린이는 기준치의 500배가 넘는 수은이 든 약을 수개월간 먹다 급성 수은 중독에 걸린 것이다.

잘못된 약을 먹은 사실을 뒤늦게 안 어머니는 약사를 고소하고 민사소송을 따로 내는 등 법정 싸움을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여러 약국을 돌아다니며 약을 직접 구입해 식약청에 고발했다.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까지 하면서 아이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김양의 어머니는 “딸 사건의 전말을 밝히려 증거를 찾는 과정에서 겪은 피눈물 나는 사연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비슷한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게 재판까지 온 것인데 법원이 다소 소극적으로 판단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