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기 좋아하는 아이, 서울대 보낸 이미혜씨

지난해 2월1일, 서울대 합격자 명단에서 아들의 이름을 발견한 이미혜(49·부산 해운대구)씨는 가슴이 벅차 올랐다. 중학교 때까지 "공부 잘한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고, 장래희망이 '축구선수' 였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공부보다 노는 데 관심이 더 많았던 아이가 서울대에 가기까지는 엄마 이씨의 오력이 컸다.

■서울대생 만든 '하루 7문제'의 힘

이씨는 아이가 초등학교 때까지 공부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릴 때 놀지 않으면 언제 놀겠느냐'는 생각에서 마냥 뛰어놀게 했다.

그러다 중학교에 올라간 뒤 문제점이 나타났다. 1학년 1학기 기말고사에서 수학 56점을 받은 것이다. 중학생이 된 만큼 이제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타이르니, 아이도 수긍했다.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해 등록했다. 그런데 이 학원은 선행학습을 시키는 곳이었다. 아이가 가져온 프린트를 보니 중1 수준에 비해 상당히 어려운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씨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 따라가도 충분히 잘할 수 있다"며 아이를 설득했고, 결국 석 달 만에 학원을 그만뒀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씨가 사교육비로 들인 돈은 중1 때 석 달간의 학원비 42만원과 고3 때 강남구청 인터넷강의 등록비 1만원이 전부다.

이경호 기자 ho@chosun.com

"학원에서 배우는 내용도 문제였지만, 우리 아이처럼 놀기 좋아하는 아이들은 학원도 친구들과 놀기 위해 다녀요. 학원버스가 있는데도 친구들과 여기저기 다니면서 놀 계획으로 굳이 걸어서 가죠. 그럴 바에야 차라리 제 눈 앞에 두고 1시간씩 제대로 가르치자고 생각했어요."

이씨는 먼저 아이가 어떻게 공부하는지 살펴봤다. 중2 여름방학까지 1년 동안 아이 혼자 이런저런 방법으로 공부를 하며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이씨는 아이의 문제점이 뭔지 깨달았다. 특히 수학은 기초조차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았다. 중2 1학기까지 70점대 위로 올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이때부터 이씨는 '수학문제 하루 7개씩 풀기'를 시작했다. 먼저 서점에 가서 수학문제집을 쉬운 것과 어려운 것을 섞어 세 권을 샀다. 거기서 매일 7~8문제를 뽑아 워드로 쳐서 A4용지에 출력했다. 이것만은 꼭 풀고 나서 놀게 하고, 틀린 것은 저녁에 함께 풀어봤다. 하루 7문제가 적은 것 같지만 일년간 꾸준히 하면 약 2500문제, 문제집 10권 분량이 된다.

"아이도 아는 게 있어야 신나게 공부할 수 있으니까 어려운 문제는 2~3개를 넘지 않게 했죠. 아이를 가르친다기보다 같이 '연구'했어요. '이렇게 풀어볼까?' '잘 안 되는데 다른 방법으로 한 번 해보자'는 식이었죠. 그러면서 아이와 사이도 더 좋아졌어요. 힘들다는 사춘기도 가뿐히 넘겼죠."



■믿고 기다리면 아이는 바른길로 돌아온다


중학교 때까지 아이는 최소한으로 공부하고, 성적은 자기가 받는 대로 만족했다. 나머지 시간은 친구들과 어울리고 팀을 만들어 축구를 하는 데 바쳤다. 고등학생이 됐다고 해서 이런 기질이 쉽게 바뀔 리 없었다. 오히려 활동범위가 더 넓어졌다. 입학하자마자 우선 록밴드 동아리에 가입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게임방, 노래방, 영화관에도 드나들었다. 학교 야간자습이 9시에 끝나기 때문에 귀가시간은 10시 정도로 정했지만, 1~2시간씩 늦게 들어오기 일쑤였다. 이씨는 귀가시간을 놓고 매번 다투면서도 결국 밖에 나가 노는 것을 허락했다. 무조건 막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대신 조건을 달았다. 몇 시까지 돌아오라든가, 토요일에 놀면 일요일에는 못 논다는 규칙을 정했다. 아이가 잘못하거나 규칙을 어기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했다.

"아이가 규칙을 어겨 혼낼 때 절대 '공부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어요. 고등학생쯤 되면 아이 스스로도 공부해야 된다는 걸 알아요. 거기에 대고 또 '공부하라'고 하는 것은 잔소리밖에 되지 않죠. '왜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는 식으로 야단을 쳤어요. 제 목적도 결국 '공부'를 시키는 것이지만, 외곽을 쳐서 아이를 중심(공부)으로 보내는 전략을 썼죠."

고2 여름방학부터는 학습일지를 쓰게 했다. 보충수업도 받지 않고, 학원에도 다니지 않아 시간관리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오전, 오후, 저녁으로 칸을 나눠 공부한 시간과 내용을 적게 했다. 그 시간에 공부를 하지 않았으면 그 이유도 함께 적었다. 이렇게 차근차근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자 고3이 됐을 때는 하루 5~6시간씩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게 됐다. 한번 자리에 앉으면 2시간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는 고2 겨울방학이 끝날 때까지 축구와 록밴드 활동을 계속했다. 이씨는 이를 말리지 않았다. 운동으로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해야 공부에도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고3 올라가기 직전, 아이가 '마지막 시합을 하고 오겠다'고 나갔다 돌아와서는 일년간 축구를 하지 않았다"며 "엄마가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했다.

"어릴 때 많이 뛰어놀았던 것이 공부의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공부 말고는 매사에 열정적인 아이라서 '저 열정을 공부에 쏟게 한다면 성공하겠다'고 생각했지요. 공부는 '약하게' 시작해서 '점점 강하게' 해야 한다고 봐요. 초등학생 때부터 과부하가 걸린 상태로 10년 동안 계속할 수 있는 아이는 없거든요. 고교생이 됐을 때 어려운 공부를 소화할 수 있도록 체력과 정신력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