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의 정석(定石) 가운데 '큰 눈사태형' 이라는 게 있습니다. 한번 시작하면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수십수(手)가 척척 이어지는 정석입니다. 이번 주가 딱 그렇습니다. 지난주 말 채성진 기자가 아프리카 출장을 떠났고 이번 주에 유석재 기자가 중국 출장을 떠납니다. 강인선 차장은 한국기자로는 유일하게 내한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을 24시간 단독으로 취재하는 기자로 선정됐습니다. 6명뿐인 팀원 가운데 3명이 여러 사유로 얽힌, 그야말로 '호떡 집에 불 난 것 같은' 한 주였습니다.

▶지면에도 이동이 많았습니다. 추진했던 인터뷰 한 건이 막판에 무산되는가 하면 원고지 26장짜리 이승만(李承晩) 전 대통령 서한과 관련된 특종기사가 마감 직전에야 완성됐습니다. 지난주와 달리 '로보트 태권 V' '프랑스인들의 연애법(戀愛法)' 같은 말랑말랑한 기사가 많았습니다. 목요일 아침까지 지면을 어떻게 꾸릴까 머리 속으로 여러 장의 설계도를 그려봤습니다. 독자 여러분이 보는 지면은 제가 선택한 그 최종 설계도입니다.

▶1988년 이후 기자생활을 하고 있지만 하루도 같은 날이 없는 게 이 세계의 특징입니다. 누군가는 '정치는 생물(生物)'이라고 했지만 세상이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매일매일 느낍니다. 전혀 예기치 않던 일들이 터지고 생각지도 못했던 기사가 생겨나지요. 그 중에는 무릎을 딱 칠 만한 특종이 있는가 하면 팀 전부를 낙담시키는 낙종도 있습니다. 그런 변화를 뒤쫓다 보면 어느덧 계절이 바뀌고 있지요. 이번 주 동장군이 찾아왔지만 머지않아 저는 아지랑이 피는 봄을 예감합니다.

▶바뀌는 것은 계절뿐이 아닌 모양입니다. 변함이 없을 것 같던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지요. 얼마 전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善終)한 데 이어 조선일보 사내에서도 부음(訃音)이 잇따랐습니다. 목요일 새벽, 그 대열에 저도 끼게 됐습니다. 지면을 완성하고 이런 일을 맞게 돼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