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전라남도 보성군 보성실업고에서 열린 졸업식에는 한국산업인력공단 유재섭 이사장이 왔다. 무슨 인연이 있길래 서울의 공단에 있는 이사장이 전남까지 갔을까?

그는 국가 기술 자격증을 집행하는 공단의 대표로서 축하를 하기 위해 졸업식에 참석한 것이다. 이 학교의 졸업생 57명은 무려 529개의 자격증을 따고 졸업했다. 공단 측은 "학생 1인당 평균 9.28개의 자격증을 딴 셈인데 신기록"이라며 "보통 전문계 고교의 학생들이 졸업하면서 취득하는 자격증은 평균 한두 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는 특히 그다지 좋은 여건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주목을 받고 있다. 학생들의 집안 환경이 그다지 좋지도 못하다. 인재가 몰려오는 곳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기초적인 수학이나 영어를 못하는 학생도 있었고, 심지어는 한글을 못 떼고 들어오는 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 12일 보성실업고 3학년 졸업생들이 한국산업인력공단 유재섭 이사장(앞줄 가운데)과 함께 자격증을 내보이고 있다. 유 이사장 오른쪽이 34개 자격증을 딴 박지현양이다.

이런 열악함을 넘어서려는 노력의 중심에는 자동차전기 과목을 맡으면서 진로담당 부장을 한 윤정현(49) 교사가 있었다. 윤 교사는 "전에 있던 학교에서 자격증을 많이 따서 사회에 진출해 성공하는 제자들을 보고 자격증 욕심을 냈다"고 말했다. 일반 회사를 다니다가 1992년 교직을 시작한 그도 뒤늦게 6개 자격증을 땄었다.

그가 처음에 시작한 것은 방과 후에 학생들에게 기초 학력부터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신문 등에 나오는 직원 모집 광고를 스크랩해서 학생들에게 보여줬다. 취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모집 광고를 보면, 용접 자격증 소지자를 원하면서도 컴퓨터를 쓸 수 있는 자격증 소지자를 우대하는 것도 많았다.

또 자신의 제자 중에서 자격증을 많이 따서 수천만원의 연봉을 받고 있는 사례도 알려줬다. 가끔 좋은 자가용을 몰고 온 성공한 옛 제자를 학생들에게 보여줬다. "자격증을 따면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있다"는 동기 부여를 한 것이다.

동시에 1대1로 상담을 진행하면서, 가능성이 높은 4명의 학생은 따로 선두 그룹을 만들었다. 서로 경쟁을 시키기도 하고 서로 배울 수 있도록 유도했다. 실기를 연습할 기계가 없으면 옆 학교를 찾아갔다. 학원에 찾아가서는 좀 싸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윤 교사는 "죽을 힘을 다해 했다"고 말했다.

학생들도 잘 따랐다. 특히 학생들은 주말이 방학 때도 놀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가정환경이 어려우므로, 자격증 접수 비용을 대고 학원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윤 교사가 담임을 맡은 반의 박지현 학생은 무려 34개의 자격증을 따, 작년 말 청와대에서 '2008년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기도 했다. 박양은 "솔직히 34개 자격증을 한번에 다 외우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법한 것이 한두 종류의 자격증이 아니다. 자동차학과에 다녔으므로, 차 정비 같은 관련 자격증이 있고, 컴퓨터 활용, 워드프로세서 같은 정보 분야의 자격증도 땄다. 박양은 "가장 큰 크레인부터 지게차까지 자격증을 딴 모든 장비는 다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학생들은 어떤 진로를 택했을까.

박양의 경우 조선이공대학에 합격했다. 취직을 하려고 했지만 장학금을 받을 수 있어서 택했다고 했다. 안타까운 점은 경기가 나쁘다 보니 이들이 취업할 수 있는 조건이 너무 나빴다는 점이다. 윤 교사는 "안타깝게도 최저 생계비 수준의 돈을 주겠다는 제의만 많이 왔다"고 말했다.

중장비를 움직일 수 있는 기사의 경우, 군대를 다녀오면 현재보다 훨씬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많은 학생이 군대를 갈 예정이다. 대학을 택한 학생도 많다. 윤 교사는 "현재는 취직 조건이 너무 안 좋아 안타깝다"며 "그러나 자격증을 10개씩 가진 제자들의 실력은 대학이나 군대에서 더 늘어나고 결국에는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