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28일 오후 3시30분 모스크바를 떠나 미국 뉴욕으로 향하는 러시아 국영 아에로플로트 SU-315편 여객기. "편안한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는 기장 알렉산드르 체플렙스키(Cheplevsky)의 안내방송이 나온 뒤에도 계속 출발이 지연됐다.

기장의 '술 취한 듯한' 목소리에 승객들이 항의를 했기 때문. 기장은 결국 전날 자신의 생일파티에서 과음했음을 시인하고 "조종석 계기판에 절대 손대지 않겠다"고 용서를 구했지만, 승객들의 항의로 이 여객기의 기장은 2시간여 만에 교체됐다.

작년 9월 14일엔 모스크바를 떠나 목적지인 우랄산맥 인근 페름시 상공을 선회하던 아에로플로트-노르드 소속 SU-821편이 추락, 탑승자 88명 전원이 사망했다. 당시 발표된 사고 원인은 엔진결함과 기상악화. 그러나 러시아 언론은 지난 4일 "기장의 혈액에서 알코올 성분이 검출됐다"는 사고조사반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음주(飮酒)가 사고의 직접 원인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기장만 취한 것이 아니다. 지난달 4일 모스크바에서 애틀랜타로 가던 미국 델타 항공 여객기가 캐나다의 뉴펀들랜드 공항에 비상 착륙했다. 기내에서 양주 1.5L를 마시고 만취한 러시아 승객 세르게이 코추르(Kotsur)가 부인과 다투고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겠다며 난동을 부린 탓이었다. 또 작년 10월 24일 휴양도시 소치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던 러시아 스카이익스프레스 소속 여객기 안에서는 만취한 승객이 '알라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다)'를 외쳐대며 기수를 오스트리아 빈으로 돌리라고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급기야 러시아 정부가 조종사와 승객들의 상습적인 음주 행위에 칼을 빼들었다. 뱌체슬라프 자하렌코(Zakharenko) 러시아 항공경찰대장은 14일 '러시아 투데이'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만취한 승객의 탑승을 금지시키겠다"고 했고, 국영 아에로플로트 항공사도 음주 경험이 있는 조종사들의 영구 자격정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조치의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술을 좋아하는 러시아인의 기호가 쉽게 바뀔 리 없고, 러시아 여객기에선 지금도 술 판매가 무제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