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멋지네요. 젠(zen·선(禪)의 일본식 발음) 스타일 같기도 하고." 얼마 전 만난 영국 디자이너는 기자의 볼펜을 유심히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가 말한 펜은 흔하디흔한 싸구려 '모나미 볼펜'이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졌거나 써본 '국민 필기구' 모나미 볼펜(제품명 모나미 153볼펜)은 1963년 5월 1일 탄생 이래 지금까지 33억 자루가 넘게 팔렸지만, 그 디자인적 가치가 제대로 평가된 적은 별로 없었다.

전문가들이 꼽는 모나미 볼펜의 가장 중요한 디자인적인 가치는 '지속성'. 46년 동안 원형(原形)을 유지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싫증이 나지 않는 스타일(timeless style)이란 얘기이기도 하다. 홍익대 산업디자인과 인치호 교수는 "한국의 대표적인 버내큘러 디자인(vernacular design·토속 디자인)"이라고 설명했다.

출발은 '디자인'이 아니라, '가격'이라는 실용성에 맞춰져 있었다. 출시 가격은 당시 버스요금인 15원.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가 '합리적인 가격에 실용적인 디자인 제품을 널리 공급한다'는 의미로 주창한 디자이노크라시(designocracy·디자인 민주주의)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펜의 부품은 단 5개. 새 부리 모양의 앞부분, 하얀 몸통, 스프링, 볼펜심, 누르는 부위인 '노크'. 디자인 평론가 김명환씨는 "더도 덜도 할 것 없이 딱 필요한 것만 갖춘 구조"라고 촌평한다.

펜이 처음 나오기까지, 100% 한국 기술로 만든 건 아니다. 일본 오토볼펜에서 물에 번지지 않는 유성잉크를 만드는 기술을 전수받았고, 디자인과 나머지 부품 제조는 모나미가 담당했다. 모나미 관계자는 "디자이너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쥐었을 때 익숙한 느낌이 들도록" 연필의 육각 구조를 적용한 몸통에는 카피의 소지도 있어 보인다. 모나미보다 13년 먼저 출시된 세계적 히트 상품, 프랑스의 '빅(BIC) 크리스털'이 바로 육각 구조. 모나미측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왜 153일까?

모나미 153 볼펜의 제품명‘153’은‘베드로가 하나님이 지시한 곳에서 153마리의 고기를 잡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성경구절에서 따온 것. 최초 판매가격이었던 15원과 출시연도인 1963년의 끝 숫자 3을 합친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