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이 여성전문기자

인터넷으로 차례상 음식까지 주문하는 세상. 이번에는 맞벌이 가정 자녀를 돌봐주는 '방과 후 도우미'가 인터넷 쇼핑에 나왔다. 인터넷 쇼핑업체 A사가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 아동이 학교에서 돌아온 뒤 간식을 챙겨주고 숙제를 도와주는 인력 서비스 판매를 시작했다. 맞벌이 부모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준비물과 숙제 챙겨주기는 기본. 표준어 구사가 자격 요건으로 명시된 것이 흥미롭다.

'미국 이민'이 텔레비전 홈쇼핑 상품으로 불티나듯 팔렸던 나라이니 보모 쇼핑도 놀라울 것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에서, 세계 최고의 사교육비 지출로 신음하는 한국에서, 맞벌이 가정의 아이 돌보기가 청소나 이삿짐 정리 같은 가사 서비스 상품으로 시장에 나왔다는 것은 현 정부의 보육정책의 허점을 찔렀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사실 알 사람은 안다. 아기는 아직 태중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하고, 태어나서 가만히 누워 있을 때가 그중 고맙고, 먹이고 재우는 것만 잘해주면 건강하게 자랄 때가 최고라는 걸. 아기 좀 많이 낳으라고 권장하는 정부는 생후 석달 된 갓난아기부터 돌봐주는 영아 보육시설을 늘리겠다고 하지만 아이 키우기는 누워 있을 때보다 기어 다닐 때가, 기어 다닐 때보다 걸어 다닐 때가 더욱 어렵다. 어린이집 '졸업'하고 유치원 가고 초등학교 가면 본격적으로 힘들어진다. 맞벌이 주부들이 버티다 버티다 못해 집으로 돌아가는 게 바로 그때다.

지난해 아동 보육업무가 여성부에서 보건복지가족부로 이관되면서 '수요자 중심 보육정책'을 내세웠지만 내용은 여전히 최저소득층에 대한 보육료 지원에 그치고 있다. 문제는 다양한 수요를 감당할 정책도 기반 시설도 부족하다는 점이다. 맞벌이 가정에서는 저녁 늦게까지 또는 24시간 운영하는 어린이집을 원하지만 이 같은 서비스가 가능한 국·공립 어린이집은 전체 보육 수요의 11%밖에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은 교육과학기술부 소관으로, 보육 서비스 대상에 해당도 안 된다. 운이 좋아 돌봐줄 친척이 있거나 형편이 좋아 입주 도우미를 둔 집이 아니라면 대부분 맞벌이 부모가 돌아올 때까지 아이들은 학원을 두세곳씩 다니거나 혼자 집을 지켜야 한다. 인터넷 쇼핑의 '방과 후 도우미'는 바로 이런 진공지대를 겨냥한 것이다.

형편이 이런데도 정부 부처 어디서도 이제까지 학령 아동의 '방과 후' 보육에 대한 수요 조사가 이뤄진 일이 없고, 관련 인구 통계 자료도 없다. 2008년 기준 우리나라의 6~12세 초등학생은 380만여명이다. 지난해 처음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50%가 넘은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200만명 안팎의 초등학생이 맞벌이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이 방과 후 홀로 남겨져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우리나라의 보육과 유아교육비용의 공적 지출은 GDP 대비 0.2%로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경제 한파로 중산층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고 주부들은 파출부로, 마트 계산원으로 조금이라도 돈벌이가 되는 자리를 찾아 집을 비우고 있는데, 집에 남겨진 아이들을 돌볼 사람은 인터넷 쇼핑으로 '구매'해야 할 판이다. 이런 마당에 아무리 저출산을 걱정한들 누가 마음 놓고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것인가. 보육정책이 정말 '수요자 중심'이 되려면 다양한 보육 수요를 파악하고, 누구를 어떻게 돌볼지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현재 영·유아에 한정된 보육 정책을 우선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확대하고 방과 후 저녁시간까지 돌봐주는 지역센터 운영이 시급하다. 당장 수요 조사부터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