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암살 당시 쓰였던 총, 그가 입고 있었던 피 묻은 옷, 술병과 술잔, 기타 소지품 등등이 잘 보존돼 있나요? … 과연 그런 유물들은 지금 보존돼 있을까? 어디에 있을까? 보존 상태는?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군인들이 그 유물들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1979년 10월 26일 오후 7시40분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安家)에서 총성이 울렸다. 김재규(金載圭)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유신의 심장을 쏘기 위한 심정이라며 일으킨 역모의 신호탄이었다. 박 전 대통령을 절명시킨 그때 그 권총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 할 때 쓴 것과 같은 종류의 독일제 월터 PPK 권총 (위). 왼쪽 작은 사진은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가 사 건 당시를 재연하는 모습.

범행에 사용된 총기의 총번(銃番)은 159270이다. 이 독일제 월터 PPK(Polizei Pistole Kurz 혹은 Kriminale) 권총은 32구경 7연발 탄창식으로 길이가 15.5㎝, 무게가 570g이다. 이 권총은 분해와 조립하기가 쉽고 명중률과 안전성이 우수해 호신용으로 인기를 끌었다. 1929년 경찰용으로 제작된 월터 PP를 더 짧게 만든 PPK는 007 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김재규가 육군대학 부총장으로 있던 1960년 육군대 총장이던 이성가(李成佳) 장군이 김에게 권총을 선물했다. 사건 당일 김재규는 정보부 사무실 금고에 보관하던 이 권총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만찬에 참석했다.

사건 발생 후 현장을 감식했던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당시 육군과학수사연구소)의 지장현 당시 총기감식팀장은 "박 전 대통령 시해사건 관련 총기는 대부분 반납했다. 당시 감정 기간은 1주일 정도였는데 감정이 끝나면 의뢰한 부대에 바로 회송했다"고 했다. 그는 "김계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갖고 있던 총도 김 실장이 소유를 포기하겠다고 해 내가 회수했다"며 "구두와 양복, 와이셔츠도 화약 감정을 하기 위해 보관하고 있었는데 보안사에서 다 가져간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지씨는 재직 당시 군과 경찰에 반납되거나 사건과 관련된 총기 중 특이한 것을 구경별로 모아놓았다고 했다. 액자 모양의 나무 상자에 설명을 적은 라벨을 붙여서 보관했는데 한때 120여정에 달했다고 한다. 그 중에는 이기붕 부통령의 장남이며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인 이강석이 가족들을 쏘고 자신의 목숨도 끊은 45구경 권총이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일부 언론은 최근 "'김재규의 총'이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 깊숙한 곳에 보존돼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씨는 "박 대통령을 시해(弑害)한 것과 유사한 종류의 총기가 보존돼 있다는 사실이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했다.

1979년 보안사령부로 넘겨진 그 권총은 어디로 갔을까. 보안사는 지금의 기무사령부의 전신(前身)이다. 기무사 관계자는 "기록에 따르면 내란 목적으로 한 살인 등 관련 사건에 대한 자료 일체를 1979년 11월 중순 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에 송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육군본부 검찰부 관계자는 "10·26 당시 판결문과 수사 기록을 보면 총기 등 관련 증거물에 대해 몰수 판결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압수 금품목록에 처리 내역이 연필로 가필돼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실탄은 육군본부 사령부로 반납됐고 손수건은 폐기한 것으로 나와 있다. 김재규가 사용한 총기는 중정(中情) 소유여서 문건에 중정에 반납됐다는 취지로 적혀있다"고 했다. 중정은 지금의 국가정보원이다. 권총 반납 시점에 대해 육본 검찰부 관계자는 "재판이 신속히 진행됐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1979년 말에서 1980년 초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 관계자는 "문제의 총기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당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보안사에서 압수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고 했다. 하지만 군 검찰부에서 이 권총을 중앙정보부로 보냈다는 기록에 대해 언급하자 국정원은 "좀 더 조사해보겠다"고만 밝혔다. 이틀 뒤 이 관계자는 "현재 (이 권총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운명의 '그때 그 권총'은 지금도 풍파를 겪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