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영

어느 저명한 미국 경제학자가 경제 성장을 위해 인권이나 민주화를 억압한 국가 전략을 '잔인한 선택(cruel choice)'이라고 했었다. 한국, 대만, 싱가포르의 고도 성장을 연구한 결론이다. 극단적인 가난에서 탈출하려고 고귀한 것을 희생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는 군사 독재 시대와 IMF 외환 위기에 이어 또 한 번 잔인한 선택을 해야 할 것 같다. 모든 경제 지표가 당초 각오했던 선을 훨씬 넘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고 있다.

정부는 발표 때마다 수십만 개 일자리가 펑펑 창출될 듯 홍보했으나, 새로 만들어질 거라던 일자리 숫자만큼 오히려 실업자가 창출될 듯싶다. 맥없이 쫓겨난 비정규직과 입사원서조차 내보지 못한 대졸자들이 MB 백수 클럽이라도 출범시킬 분위기다.

어차피 절벽 끝에 섰다면 이명박 정부는 뛰어내리든, 정면 돌파든 선택할 수밖에 없다. 융단 폭격으로 자식들이 다 죽을지 모를 전쟁터에서 똘똘한 한 둘만 품에 안고 피란길에 올라야 할 처지다.

비정하다고 욕먹고 촛불이 광화문 거리를 또 메울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침몰하는 잠수함에서 전원 동시 몰사(沒死)만은 피할 길을 찾아야 하는 절박함이 우리들 주위를 맴돌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우선 선택해야 할 것은 인플레 정책이냐, 디플레 정책이냐는 거시정책 방향이다. 2009년 1분기인 지금,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가 부동산 값과 주가 하락, 소비 침체, 수출 위축, 투자 축소 등의 별의별 '하락 증상'이 돌고 도는 디플레이션 국면으로 가고 있다. 굳이 공황이나 디플레라고 명명하지 않더라도 장기 불황, 장기 침체가 틀림없이 진행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그동안 쌓였던 버블이 꺼질 만큼 더 꺼지고, 그런 후에 경기가 반등하기를 기다리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오바마 정권이나 중국·일본이 경기 부양에 성공하는 시기를 '쪼며' 그때 가서 뛰쳐나가겠다는 준비 운동에 열중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국민이 언제까지 참아주느냐는 것이다. 펀드가 반토막 나고 일자리가 속속 없어지는 판에 '현명한 국민이라면 끝까지 인내해줄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경제팀은 디플레 국면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인내를 호소할 것이냐, 아니면 인플레 정책이라도 쓸 것이냐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투기를 각오하고 마지막 남은 부동산 규제를 확 풀어버릴지, 자금난 해소를 위해 돈을 더 찍어낼지, 재정 지출을 추가로 늘릴지 결심해야 한다.

다행히 위안이 될 만한 경험은 많다. 고물가 속에서 고도 성장을 이뤘던 70년대가 민심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잣대다. 투기꾼 만행에 진저리치면서도 국민은 가격이 하락하는 디플레 국면보다는 내 집, 내 주식 값이 함께 오르면 참아주는 인플레 쪽을 선호했다. 외환 위기에서 탈출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엄청난 통화 증발이 있었고, 그것은 결국 그 후 몇 년에 걸쳐 IT 버블, 가계 대출 버블로 이어졌다.

누가 봐도 후유증이 예상되었건만 국민 다수는 정부가 겁 없이 돈을 찍어내고 빌려 쓰는 데 저항하지 않았다. 인플레 쪽이나 디플레 쪽이나 모두 독약이지만 두 독약 중 사탕발림의 독약을 선택, 침체의 고통에서 잠시 벗어나 한숨 돌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거시 정책뿐만 아니다. 기업 경영도 그렇거니와 미세한 정책도 그렇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벌써 몇 달째 미적거리고 있지만, 이제는 잔인한 칼을 휘두르지 않으면 안 될 기로에 섰다.

칼질을 시작하면 실업자는 쏟아지고 침체는 가속화될 것이 뻔하다. '모두 살려다가 모두 죽을 수야 없지 않은가'가 유일한 위안이자 자기 변명이 될 것이다. 다만 국가 부도 상태인 아이슬란드, 부도설이 나도는 영국에 이어 한국은 작년에 통화 가치가 3번째로 많이 폭락한 위험 국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국·일본·중국이 '간접 구제금융(SWAP협정)'을 제공해준 덕에 겨우 살아났지 않은가.

그렇다고 잔혹한 칼질만 하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부가 한 손에 칼을 들면 다른 손엔 현찰 더미를 들어야만 한다. 그 현찰은 살아야 할 기업을 온전하게 살리는 데 넉넉한 처방이 되어야 한다. 이번 위기에서 탈락한 낙오자, 패배자 집단이 재활하도록 돕는 데도 아낌없이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