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철거민 참사 사망자 5명 중 3명은 용산 재개발과 직접적인 연고(緣故)나 이해관계가 없었다. 사망자 이성수(50)씨는 용인에서 가구점을 운영하다가 1990년대에 사업이 망해 생활고를 겪어왔다고 유족은 말했다. 용인·수지 철거민대책위원장을 지낸 이씨는 지난해 4월 부인과 함께 서울 용산에 와서 낮에는 뻥튀기 노점을, 밤에는 노숙을 해왔다.

그는 지난해 8월 이번 참사가 일어난 곳(용산4구역)과 이웃한 용산5구역에서 장기간 벌어진 철거민 시위에 참가했으며, 5구역 시위가 끝난 뒤 4구역으로 넘어왔다고 경찰과 유족은 말했다.

또 다른 사망자 윤용헌(48)씨는 2006년 서울 순화동에서 2년간 운영해온 70㎡(약 21평) 규모의 식당이 철거되면서 해당 지역 철거민대책위원장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경기대 부근에 16.5㎡(약 5평)짜리 단칸방을 얻어 아들과 둘이 살면서, 서울 곳곳에서 벌어지는 철거민 시위에 참가했다고 경찰과 유족은 전했다. 21일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 한대성(53)씨도 수원 신동 철거민 대책위 소속이었다.

이처럼 용산에 아무 연고가 없는 전철연 회원들이 용산4구역에 들어온 것은 지난 연말부터라고 경찰은 보고 있다. 전철연 회원들은 이웃한 용산5구역 철거민들과 함께 그곳 재개발 공사장에서 시위를 벌인 끝에 재개발조합으로부터 애초에 합의한 것보다 많은 보상금을 받았고, 이어 용산4구역으로 넘어왔다는 것이다.

이처럼 지역을 옮겨 다니며 시위를 벌이는 것이 전철연 특유의 '연대 투쟁'이다. 서울 동작구에서 활동해온 모 철거대책위원장은 "전철연은 어느 지역이고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여러 지역 회원들끼리 뭉쳐서 동네를 옮겨 다니며 함께 싸운다"고 했다.

전철연 간부 A씨는 "용산 철거민들이 먼저 우리 쪽에 '함께 투쟁해달라'고 요청했다"며 "용산 철거민들이 모은 회비로 망루를 세웠다"고 말했다.

경찰은 전철연이 개입하는 과정에서 용산 철거민들이 강경투쟁을 벌이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전철연 회원들이 고공 망루를 세우고 극한 투쟁을 하는 노하우를 용산 철거민에게 전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