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 통일 중 한글로 된 部分을 漢字로 옮기시오'. 답을 '남북'이라고 엉뚱하게 쓴 학생이 절반을 넘었다. '부분(部分)'이나 '한자(漢字)'를 해독 못해 문제 파악조차 못한 탓이다. 背水陣(배수진)을 '부수차'로, 幼稚(유치)를 '절치'로 읽거나 문화를 '文花'로, 학과를 '學校'로 쓴 답도 많았다. 몇 해 전 서울대가 교양국어 수강생 1280명의 한자 기초 실력을 측정한 결과다.

▶국어 실력은 어휘력이 기본이다. 한글학회 '큰 사전'의 16만4125개 어휘 중 한자어가 52.1% 8만5527개다. 초등학교 국어책의 55%, 의학·철학 등 전문 용어의 95%가 한자다. 한자를 모르고선 어휘력과 학습능력을 높일 수 없다. 같은 한글이라도 한자에 따라 전혀 다른 뜻을 지닌 단어도 허다하다. '사기'는 士氣 등 한자 단어가 22개, '전기'는 電氣 등 18개나 된다.

▶한자는 1970년부터 초·중·고 교과서에서 사라졌다. 1975년 중·고 교과서에 재등장했지만 한자 혼용이 아니라 괄호 안에 넣은 한자 병용이었다. 지금은 초등학교에선 아예 한문 과목이 없고 중·고교에선 독어·불어처럼 선택 과목이어서 수능시험에서도 17%만 선택한다. 북한은 우리 초등학교 5학년에 해당하는 고등중학교부터 대학까지 3000자를 가르친다.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가 초등학교부터 한자를 가르치자며 청와대에 낸 건의서에 생존한 역대 국무총리 20명이 서명했다고 한다. 와병 중인 91세 유창순씨만 빠지고 11대 김종필씨부터 38대 한덕수씨까지 사실상 전원이 서명했다. 진태하 한자교육추진연합회 이사장이 1년 넘게 쫓아다니며 설득했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 때 총리를 지낸 이해찬 한명숙 한덕수씨도 동참한 것은 진 이사장도 "조금 뜻밖"이었다고 한다. 이념이나 정치적 입장과 무관하게 한자교육 문제의 심각성을 모두가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한자를 달달 외게만 해선 효과가 적다. 이를테면 용수철(龍鬚鐵)이 '용의 수염처럼 생긴 철'이라는 것을 알려주면 어린이도 재미나게 배울 수 있다. 한자를 알면 긴 문장을 줄이는 축약 능력과 새로운 말을 만드는 조어(造語) 능력이 늘어 언어생활이 윤택해진다. 한자교육은 외국어 학습이 아니라 국어생활 정상화에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