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市場) 환경미화 일을 하며 한 푼도 쓰지 않고 열 달 동안 1000만원을 저축한 심모(65)씨가 서울시가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저축왕 선발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본지 1월 1일자 보도)

서울시가 지난해 2월부터 10개월 동안 노숙인을 대상으로 한 '저축왕 선발대회'에는 노숙인 95명이 도전했다. 여기서 심씨는 대회 기간 동안 월급을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이자까지 꼬박꼬박 모아 저축률 100%로 1위가 됐다.

심씨는 1944년생이다. 한국전쟁을 겪었고 월남전에 참전해 부사관으로 제대했다. 중동 건설 붐을 타고 '열사(熱砂)의 나라'에서 기능공으로 일하다 귀국했지만 아내는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려 이혼하고 말았다. 그 뒤 20여년은 건설 잡부, 농사일로 하루 벌이에 급급했던 삶이었다. 고엽제 후유증으로 보훈병원에 입원한 심씨가 의지할 사람은 없었다.

조선일보 DB

노숙 생활이 시작된 것은 퇴원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거리를 떠돌던 심씨가 현재 생활하는 곳은 서울시가 운영하는 자활형 쉼터다. 일 하면서 버는 돈의 30%에서 절반 정도를 저축하지 않으면 퇴소해야 한다. 2006년 말부터 노숙인 일자리 갖기 사업에 참여한 심씨는 지금 서울 가락시장에서 쓰레기 청소와 재활용품 분리수거를 한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하루 8시간 일하고 일당 5만원을 받는다.

심씨가 저축왕이 된 것은 적은 돈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는 '짠돌이' 생활 습관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오전 6시15분에 일어나 쉼터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를 먹고 8시30분이면 가락시장에 도착했다. 점심은 현장의 무료 배식으로 해결했다. 오후 작업을 마치고 쉼터로 돌아오면 오후 5시. 저녁 식사 후에는 TV 시청이나 장기·바둑으로 소일한 뒤 10시면 잠자리에 들었다. 쓸데없는 돈이 새 나갈 틈이 없었다.

급여 통장에 딸려 나온 체크카드는 사회복지사에게 맡겼고 신용불량자는 아니었지만 신용카드는 아예 만들지 않았다. 주민등록증은 쉼터에 두고 다녔다. 당연히 지갑은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휴대전화도 없고 출퇴근은 중고 자전거로 했다. 술 안 마시고 담배 피우지 않으며 한 푼 두 푼, 차곡차곡 모았다.

작년 2월, 65만원이 통장에 찍힌 것을 시작으로 3월에 90만원, 이후 매달 100만원이 조금 넘는 월급이 들어왔다. 1000원 안팎이었지만 석 달에 한 번 이자도 붙었다. 4월부터 매달 2만원씩 내기 시작한 주택청약저축액은 16만원으로 늘었다. 꼭 돈이 필요할 때는 사회복지사와 면담을 통해 필요한 만큼 찾아 쓸 수 있었지만 그는 10개월 동안 단 한 번도 그런 부탁을 하지 않았다. 대회가 끝난 11월 말 그의 저축액은 1005만원에 달했다.

용돈이 필요했을 때는 어떻게 했을까. 주변에서는 "심씨가 짬을 내서 버려진 종이 박스와 빈 병을 수집해 용돈벌이를 했다"고 말했다. 월급만큼은 절대 건드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적잖은 노숙인이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금액보다 많은 돈을 가지고 있을 때 나타나는 '저축 불안증' 때문에 애써 모은 돈을 음주·경마·성인오락으로 탕진하는 현실 속에서 심씨의 고집은 더욱 돋보였다.

월급이 나오는 매달 말일, 김준우(33) 사회복지사는 쉼터 사람들에게 통장 입금 내역을 일일이 알려준다. "통장을 잠깐 좀 주시면…." 조용히 통장을 건네받은 심씨가 쉼터 문을 나서 은행의 무인(無人) 창구를 향한다. 현금지급기 모니터에 떠오른 입금액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그 짧은 순간, 심씨의 얼굴에 살포시 환한 미소가 퍼진다. 별 달리 가진 것이 없는 심씨에겐 두 개의 통장이 '보물 1호'다.

지난 연말 심씨는 쉼터 입소 2년째를 맞았다. 입소 기간을 모두 채워 이달 말이면 쉼터를 떠나야 했지만 '노숙인 저축왕' 수상으로 퇴소 기한이 반 년 정도 늦춰졌다. 자활의 기반을 좀더 탄탄히 다지고 떠나라는 배려다. 그는 서울시 '희망 플러스 통장' 후보자에도 올랐다. 가입되면 매달 자신이 적립한 금액(5만~20만원)만큼 서울시와 민간 후원기관이 추가 적립해 힘을 보태게 된다. 1등 상금 50만원도 확보했다. 3월에는 서울시장의 표창장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