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제 할 일을 했다면 트럭 운전자 김모씨(33)가 '전과자(前科者)'가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40t 트럭을 모는 김씨는 지난 2일 서울 강서구 개화동에서 과적(過積) 차량 단속에 걸려 벌금형을 받게 됐다. 도로공사용 흙을 서둘러 싣는 바람에 쏠림 현상이 발생, 4쌍의 바퀴 중 1쌍이 중량 상한(10t)을 1.5t 초과한 것이다.

트럭 1대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김씨에겐 약식기소를 통해 30만~50만원의 벌금형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벌금도 문제지만 경찰·검찰에 출석 조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틀 이상 일을 못하는 것이 더 큰 걱정이다.

억울한 '생계형 전과자' 늘어

과적이 큰 범죄도 아닌데 처벌이 가혹하다는 지적에 따라, 전과 기록이 남는 벌금 대신 행정처분인 과태료로 바꾸는 도로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으나 국회 파행으로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김씨 같은 과적차량 위반자는 연간 8만명에 달한다.

현재 국회에는 서민·자영업자들이 범하기 쉬운 경미한 생계형 법 위반 행위 151건에 대해 처벌 수위를 낮춰주는 법 개정안이 93건이 제출돼 있다. 〈〉 이들 법안들은 야당도 별다른 반대를 하지 않고 있으나, 국회 자체가 파행되면서 새해 들어서도 선의의 전과자를 양산하고 있다.

정부가 제출한 법 개정안에는 영업 신고증을 가게에 걸어놓지 않은 식당 주인에게 부과되는 벌금형을 과태료로 낮추고, 운전면허를 휴대하지 않은 운전자에게 부과되는 벌금형을 폐지하는 내용 등이 들어 있다.

또 ▲오토바이를 타고 자전거 도로에 들어간 경우 ▲차량 운전자가 고인 물을 다른 사람에게 튀기게 한 경우 ▲고속도로에서 고장 난 차가 고장차 표지를 설치하지 않은 경우 받을 수 있는 징역·벌금형을 과태료로 낮추어 주는 규정도 있다.

그와중에 대부업 이자한도 풀려

이혼한 아내가 자녀 양육비를 남편 월급통장에서 자동적으로 인출할 수 있는 '가사소송법' 개정안과 경미한 실수로 불을 냈을 때 배상 책임을 법원이 줄여줄 수 있는 '실화(失火)책임법' 개정안 등의 법 개정안도 국회에 막혀 있다.

중소기업에 다니다 지난해 8월 실직한 주모씨(35)는 친구 2명과 소프트웨어 도매업체를 창업하려 하지만 회사설립 요건에 필요한 상법상 최소자본금 5000만원이 없어 고민하고 있다. 정부는 창업 활성화를 위해 최소 자본금 규정을 폐지, 1원만 있어도 회사를 세울 수 있도록 한 상법 개정안을 만들었으나, 이 법안은 국회 법사위 소위에서 3개월째 낮잠을 자고 있다.

영세 서민들이 급전(急錢)을 빌리는 대부(貸付)업 시장은 새해 들어 무법(無法)지대가 됐다. 등록 대부업체가 받을 수 있는 이자율을 최고 연 60%로 제한한 대부업법 규정이 작년 말로 효력이 만료됨에 따라, 정부는 이 규정을 5년간 더 연장하는 법 개정안을 지난해 11월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대부업법 개정안은 작년말까지 개정되지 못했고, 새해 들어서는 이자율 상한 규정이 효력을 상실한 상태다.

국회 폭력은 처벌 안받는 모순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전국 1만6000개 대부업자가 이자율을 몇백 %씩 받아도 처벌할 근거가 없는 무법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창원 한성대 교수(행정학)는 "국회의원들은 의사당 내 폭력·기물파괴 같은 불법 행위에 대해 어떤 처벌도 받지 않으면서 서민들을 선의의 전과자로 내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