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총리를 제외한 중폭 개각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정치적인 고려 때문에 새로운 '대규모 인사실험'을 하는 것은 비상시국에 걸맞지 않다는 인식 때문이다. 여권의 관계자는 "작년 말부터 정치권에서 '집권 2년차에는 여권 진용을 전면적으로 다시 짜야 한다'는 의견이 많이 제기됐던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경제가 가장 어려워질 올 상반기에 정부가 분초를 다퉈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서 전면개편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 이 대통령의 인식"이라고 했다. 여야가 주요법안 처리를 둘러싸고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총리를 포함한 대다수 장관들의 인사청문회로 여야 간 갈등이 더욱 가속화될 경우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속도전' 동력이 상실될 수도 있고 새 장관들이 자리를 잡는 데도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다만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포함한 경제부처 핵심 장관들을 교체함으로써 '비상경제대책회의'의 얼굴들을 새롭게 짤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의 관계자는 "현재 경제팀이 위기의 급한 불은 껐지만 시장(市場)의 신뢰가 여전히 낮아 교체 필요성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최고의 경제팀이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는 인선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국방부통일부 등 나머지 교체 대상 3~4개 부처 장관은 그간의 업무 성과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 등을 토대로 추려진 것으로 전해졌다.

경제팀 교체 못지않은 이번 개각의 관전 포인트는 김성호 국정원장과 임채진 검찰총장, 어청수 경찰청장, 한상률 국세청장 등 4대 권력기관장 교체 문제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국가정체성을 훼손하는 폭넓은 상황이 있다" "정권은 바뀌었으나 (사회 곳곳의) 권력이 바뀌지 않았다" 등 취지의 말을 해왔다. 여권 인사들 사이에서도 지난 1년 동안 정권교체를 실감하기 어려운 일이 자주 벌어진 데는 4대 권력기관장의 '뒷받침'이 부족했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상황이다. 임 총장과 한 청장은 노무현 정부 말기 임명됐으나 현 정부에서 유임됐고, 김 원장과 어 청장은 노무현 정부 때 법무부 장관과 서울경찰청장에 각각 발탁됐다. 여권의 관계자는 "집권 2년차의 기반을 확고히 다지기 위해서는 이들을 바꿀 필요가 있다"면서 "이들 중 일부가 자진사표를 낼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반면 여권의 사령탑인 청와대 개편 폭을 최소화하기로 한 것은 일단 정정길 실장 체제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이 위기 국면에서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 실장은 지난 2일 시무식에서 직원들에게 "밖에서는 조용하고 겸손하게, 안에서는 단호하고 확고하게 일해야 한다"고 말하며 기강 다잡기에 나섰다. 이 대통령은 또 국정상황실을 신설하는 대신 기존의 기획관리비서관실에 정부의 각종 정보를 취합해 분석하는 임무를 추가로 맡길 계획이다.

이 같은 이 대통령의 개각 구상에 따라 박근혜한나라당 대표 진영과의 파트너십 회복은 다시 장기과제로 넘기게 됐다. 또 '친정체제 구축론'으로 요약되는 '친이(親李) 진영'의 인사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함으로써 정치적인 불만 요인이 내연(內燃)될 소지도 있다. 다만 현역의원 1~2명이 입각하거나 이주호 전 교육과학문화수석 등 일부 핵심 인사들이 차관으로 임명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