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安重根·1879~1910) 의사가 하얼빈(哈爾濱)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쓰러뜨린 지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다. 소설가 이문열(李文烈·61)씨가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맞아 오늘부터 본지에 소설 안중근 '불멸'을 연재한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쯤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역에서 이토를 3발의 총알로 정확히 가격해 쓰러뜨렸다. 이씨는 "안 의사의 생애와 동양 평화의 큰 뜻을 21세기적 의미로 재해석하고, 테러리스트로 폄하되기까지 하는 하얼빈 의거의 정당한 의미를 돌이켜 볼 것"이라고 집필에 임하는 각오를 밝혔다. 소설 연재를 앞두고 이씨와 허동현(許東賢·49) 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 근현대사 전공)이 지난 12월 29일 오후 하얼빈 의거 100주년과 소설 연재의 의미를 짚는 대담을 가졌다.
▲이문열〓안중근 의사의 삶을 세 가지 측면에서 조명할 생각이다. 하나는 그의 의거가 갖는 의미의 불멸성이다. 안 의사 관련 기록을 보면, 의거 이후 1910년을 전후해 많은 조선인들이 집에 안 의사의 초상을 모셔두고, 상점에서 사진을 공공연히 팔기도 했다고 한다. 나는 그것이 항일투쟁에 영속적인 추동력을 줬다고 본다. 또 하나는 안 의사의 이미지가 최근 테러리스트, 또는 허풍쟁이 돈키호테로 변질되는 것을 바로잡아 그의 훼손되지 않은 이미지를 복원시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록 31년의 짧은 생을 살았지만 늘 자신을 던질 곳을 찾으려 했고, 자기에게 주어진 소명을 기다렸던 인간 안중근을 보여주고 싶다.
▲허동현〓얼마 전 일본에서 유행한 만화 '혐한류(嫌韓流)'는 안 의사를 '우둔한 테러리스트'라고 매도했다. 만화는 그 근거로 "안중근은 이토를 저격했지만 일본은 맥아더를 쏘지 않았다"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맥아더는 일본을 군국주의로부터 민주주의로 전환시킨 사람이다. 이토는 정확히 그 반대의 행위를 한 사람이므로 비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안 의사는 적의 수뇌를 척살했을 뿐, 무고한 민간인의 목숨을 해치지 않았다. 항일 의병활동을 할 때도 포로로 잡힌 일본군을 죽이지 않고 풀어줬으며 이토를 저격한 후에는 만국공법에 따라 정당한 포로 대접을 해 줄 것을 일본 측에 요구했다. 이것은 그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대(對) 일본 전쟁에 나선 의병장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갖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그러기에 안 의사의 행적을 복원하는 것만으로도 그가 9·11 테러범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이다. 이토와 안중근은 근대국가 건설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토는 그것을 위해 주변 국가들을 희생시켰고, 안 의사는 이웃 나라들과의 공동번영이라는 더욱 원대한 뜻을 품었다.
▲허〓일본의 대동아공영이 조공(朝貢) 질서에 따르는 제국주의적 평화라면, 안 의사가 주창한 동양평화론은 요즘 말로 하면 다자(多者)적이고 수평적인 국제 질서다. 안 의사는 한·중·일 3국 젊은이들로 공동의 군대를 조직하고, 각국 젊은이들이 서로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이미 100년 전에 오늘날의 유럽연합과 같은 다자간 협력 질서를 꿈꿨다고 볼 수 있다.
▲이〓 일본 제국주의가 대동아공영이란 미명 아래 진행되는 바람에 안 의사가 추구했던 동양평화의 높은 뜻이 훼손된 측면이 있다. 이 부분을 부각시켜 안 의사의 사상을 보여주는 것 또한 이번 소설의 과제다.
▲허〓일본이 이토를 기념하는 행위를 보면 우익 노선의 가치가 형상기억 합금처럼 복원되는 느낌을 준다. 반면, 안 의사는 민족주의와 탈(脫)민족주의라는 일견 양립이 불가능해 보이는 가치를 모순 없이 함께 구현하길 원했다. '동양평화론'을 주장한 안 의사는 오늘날의 동아시아 공동체론 선구자로 기억할 수 있다. 이처럼 안 의사는 21세기 한국, 또는 동아시아의 역사적 과제에 해답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자산(資産)을 갖고 있다. 독자로서 이번 소설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이토처럼 우익적 가치로만 고착되지 않는, 지금부터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새로운 한국적 가치의 원형으로 안 의사를 그려 주길 바란다.
▲이〓안 의사는 유학을 공부한 뒤 천주교를 받아들였고, 일본으로부터도 배울 것은 배운 열린 정신의 소유자였다. 그가 손가락을 자른 유명한 '단지사건'은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강조하는 유교적 효(孝) 사상을 벗어나 상무정신에 바탕을 둔 군인이 되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이토를 처단하면서도 일왕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은 점도 그의 민족 사랑이 전혀 맹목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문열
▲1948년 경북 영양
▲서울대 국어교육과 중퇴
▲주요 작품: '사람의 아들', '우리들의 일
그러진 영웅', '시인'
▲주요 수상 경력: 동인문학상, 오늘의 작가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등
허동현
▲1960년 서울
▲고려대 사학과
▲주요 저서: '일본이 진실로 강하더냐' '근대한일관계사연구' '열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
▲주요 논문: '개화기(1876~1910) 한국인의 일본관', '통감부 시기(1906~1910)를
어떻게 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