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윤대녕이 자란 시골집 방 바로 곁에 외양간이 있었다. 천둥 번개가 치는 밤이면 소년은 곧잘 잠에서 깨곤 했다. 그때마다 옆에서 소가 푸우 하고 숨을 몰아쉬는 소리를 들으면 그렇게 안심이 될 수가 없었다. 소년에게 소는 친구이고 가족이고 수호신이었다. 조상들은 소를 '생구(生口)'라고 불렀다. 집안 하인이나 종을 일컫는 말이다. 농사에 없어서 안 될 가축이자 소중한 재산이었기에 사람이나 다름없는 애정을 기울였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김종삼 '묵화·墨畵') 할머니는 혼자 사는 처지일 것이다. 할머니와 소는 종일 고된 들일을 끝내고 서로를 위로한다. 춘원 이광수는 수필 '우덕송(牛德頌)'을 썼을 만큼 소를 좋아했다. '그의 느리고 부지런함, 그의 유순함. 그러면서도 일생에 한두 번 노할 때에는 그 우렁찬 영각, 횃불 같은 눈으로 뿔이 꺾이도록 맥진(驀進)함, 그의 침묵함….'

▶소띠 해가 밝았다. 그 어느 때보다 모질고 어수선한 해가 될 것이라고 하니 닮고 배워야 할 소의 미덕이 한둘 아닐 것 같다. 무엇보다 소처럼 진중한 인내로 마음을 다스릴 시절이다. '세월은 본디 길고 오래건만 마음 바쁜 이가 스스로 짧다 한다. 천지는 본디 넓고 넓건만 마음 천한 이가 스스로 좁다 한다. 풍화설월(風花雪月)은 본디 한가롭건만 악착한 사람이 스스로 번거롭다 한다.'(채근담) 현대인은 끊임없이 자신을 남과 비교하면서 다다를 수 없는 동경(憧憬)의 천장, 채울 수 없는 욕망의 갭에 안달하고 좌절한다.

▶평정(平靜)은 범사(凡事)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온다. '양치는 손으로/ 그녀가 손수 짠/ 토끼같이 부드러운/ 양말 두 짝/ 황혼의 빛과/ 양털로 엮은 듯한/ 주머니/ 두 개/ 그 속에/ 두 발을/ 슬며시 넣었다/ 놀라운 양말/ 내 발은/ 두 마리 양털 물고기/ 황금 털이/ 나 있는/ 짙푸르고 기다란 상어 두 마리/ 두 마리 커다란 검은 새/ 대포 두 대/ 천상의/ 양말이/ 내 발에 축복을 내렸다….' 네루다는 하찮은 양말 한 켤레가 주는 무구한 즐거움과 놀라움을 71행이나 써내려 갔다. 토마토·옷·양파·수탉·다리미·우표첩에도 시를 바쳤다.

▶삶의 진정한 기쁨은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서 온다. 저 멀리 높이 있는 것도 거창한 것도 아니다. 미국 일간지 USA투데이는 얼마 전 '경제난으로 아무리 고통이 커지더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감사해야 할 여섯 가지 이유' 중 하나로 '가족'을 꼽았다. 남의 집 마당을 기웃거릴 게 아니라, 속상한 일 끊이지 않아도 내 집, 내 가족이 있다는 것 자체가 빛이고 힘이다. 우보천리(牛步千里)라고 했다. 가족과 함께 느리지만 뚜벅뚜벅 소걸음으로 가다 보면 어느덧 천리길, 터널의 끝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