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우·고려대 경영대 교수

나는 탤런트 박신양과 일면식도 없다. 박신양의 팬클럽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최근 이른바 '박신양 사태'를 지켜보면서 한국의 협상문화에 대해서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사건은 박신양이 드라마 '쩐의 전쟁' 연장 방영분에 대해서 편당 1억7000만원이라는 과도한 출연료를 요구했다고 드라마제작사협회가 비난하고 나온 데서 비롯됐다. 그러한 이유로 이들 드라마 제작사가 제작하는 드라마에 박신양을 무기한 출연정지시키겠다는 것이다. 배용준은 회당 2억5000만원을 받아도 일본의 투자를 받기 때문에 괜찮다 하면서 말이다. 경제적 위기를 겪는 지금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박신양이 너무 과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금에 와서 그때의 출연료가 너무 과하다고 하는 것은 합리적일까? 박신양 사태는 다음과 같이 비유할 수 있다. 추운 겨울이 시작되어 백화점에서 가죽 코트를 정상가격에 사서 한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었다. 그런데 봄이 되어서 백화점을 다시 가 보니 반액 세일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코트를 너무 비싸게 샀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차액을 돌려달라고 떼를 쓰는 격이다.

여기서 협상과 계약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두 당사자가 협상을 통해서 계약을 할 때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약속과 합의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협상할 때는 미래의 가능한 여러 가지 경우를 모두 상상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이런 계약을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계약은 관계의 시작일 뿐이라고 말이다. 따라서 합의한 내용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럴 거면 계약서는 왜 작성하고 협상은 왜 하나? 충분한 검토와 계산을 한 후에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야 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협상력은 변화한다. 필자가 미국에 있을 때 일이다. 미국 피츠버그에서 시카고를 가는 일을 3~4주 전에 미리 계획해서 표를 구입하면 200달러 정도면 살 수 있었다. 그런데 급한 용무로 내일 가려면 1200달러 정도를 줘야 한다. 이것은 피츠버그에서 시카고를 거쳐서 한국을 갔다 오는 것보다도 더 비싼 가격이다. 이는 출발시각이 가까울수록 항공사의 협상력이 증진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즉, 항공사는 수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 비행기표 구매 시점에 따라서 가격책정을 다르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 정부가 항공사의 운항을 전면 금지시켰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쩐의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박신양도 한류스타인 배용준 못지않은 협상력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박신양의 연기력으로 '쩐의 전쟁'이 36%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신양이 가장 협상력이 있을 때 협상을 한 결과, 제작사에서 거금을 지급하기로 했던 것이다. 또한 제작사의 계산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 후에 제작사가 적자가 났다면, 그 당시 계산을 잘못한 책임은 본인들이 떠안아야 할 몫이다.

박신양의 엄청난 출연료를 감수하고서도 연장방영을 한 이유가 방송사의 무리한 압력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드라마제작사협회는 관행화되어 가는 무리한 연장방영을 금지할 것을 방송국에 요구해야 할 것이다. 힘센 방송국에는 아무 얘기 못하고 연기자 개인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

아무쪼록 오는 봄에는 백화점에 정상가격으로 산 겨울코트를 반품하거나 차액을 돌려달라는 요구가 없기를 기대한다. 추운 겨울에 따뜻하게 입었으면 그만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