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2부는 "무속인 정씨는 신도 13명에게 1억49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8일 밝혔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방편을 권유하는 정씨의 감언이설에 현혹된 신도들의 과실도 크다며 정씨의 배상 책임을 60%로 제한했다.

중앙일보 12월8일자 보도

사찰 주지의 권유에 따라 굿을 한 사람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수년간 무속인 생활을 하다 경기도의 한 사찰 주지가 된 피고는 정·재계 유력 인사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신도들에게 굿을 강권했다. 천도제, 용왕제를 올리지 않으면 화를 당할 것이라는 레퍼토리였다.

이 주지는 굿을 할 때마다 수백만 원을 받았고 여우 꼬리 조각 한 점, 무덤 속에 고인 물 한 바가지에도 거액을 매겼다. 그러다 차차 그의 실체가 드러나게 됐다. 유명 인사들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게 밝혀졌고 만병통치약이라던 물에서 대장균이 발견됐다. 종단이 조사를 벌이자 그를 따르던 사람들도 속은 걸 알고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벌이게 된 것이다.

1981년 레이건 당시 미 대통령이 힝클리에게 저격당해 죽을 고비를 넘기자 아내 낸시는 조운 퀴글리라는 점성술사를 백악관으로 불렀다. 암살의 위험을 예견할 수 있는지, 미리 피하게 해 줄 수 있는지 묻자 그는 자신 있게 가능하다고 답했다. 그때부터 그는 백악관의 조언자가 됐다.

1988년 전직 백악관 비서실장인 도널드 리건의 회고록에 의해 언론에 그 존재가 알려질 때까지 퀴글리는 낸리 레이건의 개인적인 삶은 물론 백악관의 행보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일설에 의하면 조지 부시가 부통령 후보로 선택된 것도 그의 충고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탐정 셜록 홈즈를 창조해낸 코난 도일은 심령술의 신봉자였다. 아내와 아들이 잇달아 사망하자 그는 사후 세계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심령술을 통해 죽은 자를 불러낼 수 있다고 믿었다. 코난 도일은 유령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다는 주장에도 적극 동조했다.

힘든 일을 겪을 때 초자연적 존재를 찾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굿을 하거나 조상의 묘에 고인 물을 마시는 것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을 지지할 수는 없다. 앞의 사건에서 법원이 무속인에게 속은 사람들에게도 잘못이 있다며 손해배상액을 40% 감액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법은 합리적인 근거를 갖춘 건전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만 보호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