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는 박모(여·29)씨는 몇 년 전 미등록 대부업체에서 300만원을 빌렸다. 대부업자는 “차용증을 써달라”고 요구했다.

박씨는 급한 마음에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지 않은 채 서명했다. 박씨의 생활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고 이자는 밀려가기 시작했다. 대부업자는 박씨에게 “당장 만나자”며 독촉했다. 업자는 박씨를 여관으로 끌고 가 성폭행했다.

박씨가 울면서 반항하자 업자는 “차용증에 나와있는 조항”이라며 “네가 서명하지 않았느냐”고 큰소리 쳤다. 알고 보니 박씨가 서명한 차용증엔 △`돈을 빌려준 대부업자가 연락을 하면 그 즉시 만나야 하며 △`한 번 만날 때마다 이자를 제한다는 조항이 들어있었다. 이후에도 박씨는 업자에게 3~4번 더 성폭행을 당했다.

업자는 박씨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까지 찾아와 행패를 부렸다. 현재 박씨는 정신적 충격 때문에 아르바이트마저 그만둔 상태. 박씨는 사채 원금을 200만원 정도밖에 갚지 못해 여전히 수백만원의 이자가 남아있는 상황이다.

피해 사례
연 190% 폭리, 3억 빌린 사업가 1년 만에 6억 물어
금감원 피해신고센터 상담 97%가 미등록업체 고발

불황의 칼바람 속에서 미등록 대부업자에게 손을 벌렸다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서민이 늘고 있다. 경찰청 생계침해형 부조리사범 통합신고센터에 접수된 '사금융 피해 사례'엔 안타까운 상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성폭행에 협박까지 당해 일자리를 그만둔 박씨의 경우도 그중 하나다.

금융감독원 사금융 피해 신고센터에는 올 상반기 2062건의 상담이 접수됐다. 지난해 상반기(1771건)와 비교하면 16% 늘어난 수치다. 사채 피해 상담건수는 2004년 2898건`→ 2006년 3066건`→ 2007년 3421건으로 지속적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고금리와 불법추심에 대한 상담은 주로 미등록 대부업체에서 발생한다. 금감원에 따르면 "터무니없이 높은 금리 때문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의 97%가 미등록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린 경우"라고 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신용도가 낮아 상대적으로 안전한 제도권 금융기관을 이용할 수 없는 서민들이 미등록 대부업체의 횡포를 우려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빌리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미등록 대부업자들은 조직폭력배와 연계해 협박과 폭력을 일삼는다. 지난 4월엔 사채를 못 갚은 여성을 일본으로 인신매매한 사건까지 벌어졌다. 경찰 수사 결과 미등록 사채업자 최모(49)씨 등 2명은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에게 연 이자 136~190%로 돈을 빌려준 뒤 갚지 못한 여종업원 2명을 일본의 성매매 업소에 2500만원씩 받고 팔아 넘긴 혐의로 구속됐다.

뿐만 아니다. 사채를 갚지 않는다고 채무자에게 강제로 필로폰을 투약해 구속 기소된 경우도 있다. 건설시행업자인 김모(36)씨는 2006년부터 총 3억원 정도를 사채업자 원모씨로부터 빌려 썼다. 김씨가 처음 빌린 돈은 3억원이었지만 1년 뒤 페라리 등 외제 승용차 두 대(5억원 상당)를 포함해 모두 6억원을 갚아야 했다. 이자가 한 달에 10~15%나 됐다. 원씨는 급기야 김씨에게 필로폰을 투약하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결국 김씨는 필로폰에 중독됐다.

치과의사도 사채업자 원씨의 덫에 걸려들었다. 강원도에서 치과를 하던 정모씨는 5억5000만원을 빌려 이 돈을 모두 주식 투자에 쏟아 부었다. 하지만 원금까지 모두 잃은 정씨는 롤스로이스 팬텀 승용차(5억원 상당)를 원씨에게 빼앗겼다. 정씨는 아파트(시가 3억5000만원 상당)와 오피스텔까지 담보로 맡겼지만 원씨는 협박과 독촉을 멈추지 않았다. 견디다 못한 치과의사 정씨는 해남 폭력조직 두목 박모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박씨는 원씨에게 '치과의사 정씨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러다 지난 9월 다른 사건과 관련해 살인혐의로 도주하던 박씨는 정씨를 찾아와 "승용차를 빌려달라"고 요청했다. 차를 빌려준 정씨는 범인 도피를 도와준 혐의로 구속됐다.

미등록 불법업체 운영 실태
전주는 따로, 대리사장 내세운 경우 많아
수금은 대부분 '주먹' 출신들이 나서 해결

사람 목숨까지 담보로 잡는 미등록 대부업체들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얼마 전까지 미등록 대부업체를 운영했다는 K(31)씨의 증언은 충격적이다. 그는 “수금은 주로 ‘주먹’들이 맡고 있고 그 뒤에는 돈을 대는 ‘전주(錢主)’가 있다”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먹’들은 대부분 현금 동원 능력이 없기 때문에 전주를 따로 두고 ‘바지 사장’ 노릇을 한다. K씨는 “대학교수가 1억원을 맡긴 적이 있었고 경찰관 출신과 동업한 적도 있다”면서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과 동업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K씨는 “동업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라며 “이자에는 관심 없지만 나중에 누군가를 ‘손봐 줄 일’이 생길 때 ‘주먹’들을 활용하려고 돈을 대는 경우와, 실제로 돈을 벌기 위해 ‘주먹’들과 일하는 경우”라고 말했다. K씨에 따르면 ‘주먹’과 전주 사이에 나누는 이자 비율은 보통 7 대 3 또는 6 대 4 정도. K씨는 “무등록 사채업자로부터 돈을 빌리는 사람은 일반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사람들이나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 아니면 급하게 현금이 필요한 도박꾼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미등록 대부업체들이 받는 이자는 일정하지 않다. K씨의 경우 “보통 일수를 쓰면 100일을 기준으로 찍었다(갚았다)”고 했다. 대개 1000만원을 100일 단위로 빌리는데 만약 한 달 안에 갚으면 이자 10%를 쳐서 1100만원을 갚고 100일을 채워 갚으면 매일 12만원씩 1200만원을 갚는 식이다. 1000만원을 빌려도 ‘선이자’로 300만원을 떼기 때문에 실제 부담하는 이자는 더 늘어나는 셈이다.

실제로 대부업에 진출한 ‘주먹’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K씨는 “사채는 사실 만만한 돈벌이”라며 “대부분 (대부업을) 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엔 사채 때문에 하도 말이 많아서 (돈 안 주는 사람들한테) 그냥 겁만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부분 애들(조직원) 몇 명이 찾아가서 이야기하면 겁 먹고 바로 이자를 준다”고 말했다. 그는 “한곳에서 꾼 돈을 갚으려고 또 다른 데서 돈을 빌려오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K씨는 최근 ‘쉬운 돈벌이’를 그만뒀다. 그는 “전주가 나보다 더 독종이었다”면서 혀를 찼다. 그가 얼마 전 결별한 전주는 경찰관 출신이었다고 한다. K씨는 “전주는 우리 업소가 단속에 걸리지 않도록 뒤를 봐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의 공생관계는 한 할머니 때문에 깨지고 말았다.

“폐지를 주워서 하루하루 먹고 사는 할머니가 1000만원을 빌린 적이 있었어요. 손자가 아픈데 돈을 빌릴 곳이 없다는 거죠. 아무래도 벌이가 시원치 않다 보니 할머니가 제 날짜에 이자를 못 갚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정이 딱하고 돈 떼먹을 사람도 아닌 것 같아 눈 감아주곤 했는데 나중에 전주가 그걸 알고 할머니에게 욕을 퍼부으며 협박하더라고요. 자기 어머니뻘 되는 사람의 멱살을 쥐고 흔들어대기에 그 꼴을 보다 못해 ‘지금까지 일한 돈 안 받겠다’고 하고 나왔어요. 아주 독종이었죠.”

등록 사채업자의 항변
"악덕 업체 때문에 피해… 원금 받기도 힘들어
 신용 없고 돈 없는 서민들에겐 꼭 필요한 곳"

미등록 대부업체들의 횡포에 피해 입은 사람들 이야기는 인터넷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글이 뜨면 “사채하는 X들은 사지를 찢어 죽여야 한다” “사채업자라는 게 부모 자식에게 부끄럽지도 않느냐”는 식의 악플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등록 대부업체를 운영하는 D캐피탈 대표이사 C씨는 “요즘 정말 죄인이 된 기분”이라고 했다. 그는 “몰지각한 불법 대부업체들 때문에 정식으로 등록해서 장사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면서 “아버지가 사채업자라고 하면 손가락질 받을까 봐, 애들한테 이런 일 한다는 말도 못한다”고 털어놨다.

40대 후반인 그는 몇 년 전만 해도 잘나가던 은행 간부였다. C씨는 "40대 중반부터 은퇴 압박이 들어왔고 더 이상 버티는 게 눈치 보여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요즘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신체포기 각서를 쓴다거나 집에 가서 드러눕고 이런 짓은 안 합니다. 그래도 돈은 받아야 하니까 압박은 하죠. 그래서 저희는 자금 사정이 괜찮은 중소기업만 상대합니다. 사실 대부업은 이자를 보고 하는 사업인데 요즘은 원금이라도 받으면 다행이다 싶은 상황이에요. 얼마 전에는 돈 빌려준 의류회사가 망해서 이자를 상품권으로 받은 적도 있으니까요."

C씨는 “답답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솔직히 제도권 금융기관이라는 은행도 대출로 돈 버는 건 마찬가지 아니냐”는 것이다. “저도 은행 다녀봐서 알지만 카드 실적 압박만큼 대출 실적 압박도 심합니다. 대출이 돈이 되니까요. 얼마 전에 유명 연예인이 사채 때문에 자살했다는 기사가 나와서 대부업에 대해 나쁘게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정말 돈이 급한 사람들에게 대부업은 꼭 필요합니다. 은행 쪽 이자율이 낮긴 하지만 웬만큼 신용 상태가 좋지 않으면 돈 빌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최근 금융감독원은 불가피한 대부업체 이용에 대해 '불법 사금융 피해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급하게 돈이 필요해 사채를 써야 한다면 조목조목 따져보고 현명하게 사용하라는 것. 대책에 따르면 돈이 필요한 사람은 우선 서민맞춤대출 안내서비스(www.egloan.co.kr)를 찾아가 자신의 신용도에 맞는 대출상품이 있는지 알아본다. 제도권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지 못해 대부업체를 이용해야 할 때는 시청 또는 도청에 등록된 업체인지 확인한다. 계약 후에는 대부계약서나 영수증 같은 관련서류를 반드시 받아 보관해야 한다.

또한 불법적인 채권추심과 법정 기준을 웃도는 고금리는 불법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현행 ‘대부업법’에 따르면 대부업자가 채무자에게 폭행·협박 등을 가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채무자의 가족이나 친족에게 채무 사실을 알리거나 개인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경찰청 생계침해형 부조리사범 통합신고센터는 “사채업자의 불법채권 추심을 못 견뎌 또 다른 사채를 빌려 빚을 갚는 소위 ‘돌려막기’가 늘고 있다”면서 “이럴 때는 대부업협회에 신고해서 채무조정을 받거나 법원의 개인파산 등 법적 절차를 활용해서 채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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