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8월 대통령직에서 퇴임, 청와 대를 나와 서울 서교동 자택에 들어서 고 있는 최규하 전 대통령과 부인 홍 기 여사. 조선일보 DB

고(故) 최규하 전 대통령과 부인 홍기 여사에 대한 일화를 묶은 책이 곧 출간된다. 권영민(62) 전 독일대사가 1979~1980년 청와대 비서관으로 일하는 등 최 전 대통령을 40년 가까이 곁에서 지켜본 모습을 담은 '자네, 출세했네-내가 보아온 최규하 대통령과 홍기 여사'다. 회고록 등 일체의 기록을 남기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최 전 대통령의 인간적 모습이 이 책을 통해 소개된다. 다음은 책의 주요 내용.

"1980년 4월12일, 청와대 경내에서 당시 최 대통령이 부속실 권영민 비서관에게 물었다. '권군, 국민들이 나를 보고 뭐라고 하나.' 머뭇거리던 권 비서관의 입에서 '모두들 각하를 최 주사라고 부릅니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당시 국민들은 최 전 대통령을 지나치게 신중하고 우유부단해 6급 공무원 정도밖에 안 되는 것 아니냐는 의미로 '최 주사'라고 불렀다. 평소 온화하기 그지없던 최 전 대통령은 '뭐야, 최 주사?'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

"최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달리 철벽 경호를 귀찮게 생각했다. 대통령이 청와대 경내를 산책한다고 하자 대통령 경호실장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런데 최 전 대통령은 '그만 가서 일 보라. 나 같은 사람에게 누가 총을 겨누겠는가'라며 경호실장을 물렸다."

"최 전 대통령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온 뒤 '에잇, 알만한 사람들이 왜 그런 거야'라며 화를 내더니 코트라 사장을 전화로 연결해 야단을 쳤다. 얼마 전 코트라 해외지사에서 근무하던 장남 최윤홍씨가 귀국했는데, 사장이 '축하한다'며 골프장에 초청했던 게 이유였다. 최 전 대통령은 '아들을 특별 대우해 버릇을 나쁘게 했다'며 화를 삭이지 못했다."

"애연가인 최 전 대통령은 싸구려 '한산도' 담배만 피워 청와대에는 어딜 가나 한산도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외국 대사들이 신임장 제정을 위해 청와대에 다녀간 뒤 외교가에서는 '한산도는 대통령이 즐겨 피우는 한국 최고급 담배'라는 소문이 났다."

"최 전 대통령은 외무장관 시절부터 결재 받으러 온 국장들에게 '담배 하나 달라'고 한 뒤 그 담뱃갑을 무의식적으로 자기 호주머니에 집어넣는 습관이 있었다. 한 국장이 하도 여러 번 이 같은 일을 당하자 다음 번에 장관이 '담배 있나'라고 물었을 때 '담배 끊었습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얼마 후 몰래 담배를 피우다 장관에게 들켰고, 이후 이 국장은 '금연 결심 못 지키는 의지가 약한 사람'으로 찍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