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의 흥행이 신통찮다. 개봉 첫 주 50만 관객 동원 이후 점차 세가 줄어, 3주차까지 147만6000여 명을 끌어 모으는데 그쳤다. 낙폭도 크고, ‘미인도’, ‘앤티크-서양골동양과자점’ 등 후발주자들이 대기 중이어서 이대로 주저앉을 공산이 크다. 흔히 메인스트림 영화 성공기준으로 꼽는 200만 선에 못 미칠 가능성도 높다.

‘아내가 결혼했다’ 흥행부진의 타격은 크다. 명확한 흥행 선두가 없는 탓에 전반적으로 시장이 위축되어 10월 전체 영화흥행이 최악으로 떨어졌다. 더 심한 것은 ‘의욕’ 면이다. 이 정도로 흥행 가능성 높다 점쳐지고, 홍보도 철저히 한 영화마저 실패해버리면 한국영화 시장 자체에 대한 의욕이 휘발된다. 투자자들은 더더욱 몸을 사리게 된다.

그러나 그럴 필요까진 없다. ‘아내가 결혼했다’ 실패는 영화가 지닌 속성과 실제 시장상황 간 불일치 탓일 뿐이다. 한국영화 자체에 대한 애정 감소라든지 전반적 극장수요의 저하 차원 문제는 아니다. 모든 면에서 성공요소들을 고루 갖추고 있다 여겨졌던 ‘아내가 결혼했다’는 사실 상 모든 면에서 실패확률이 높은 콘셉트를 지니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하나씩 살펴보자.

‘아내가 결혼했다’가 처음 주목받은 것은, 2006년 제 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자 베스트셀러가 된 박현욱 원작의 영화화라는 점이었다. 물론 팬베이스를 미리 갖춘 영화의 파워는 막강하다. 그러나 과연 현 시점, ‘베스트셀러 영화화’라는 조건이 과연 팬베이스를 갖추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인다. 출판시장은 4분의 1 토막 이하로 떨어진 지 오래다. 예전처럼 200만부씩 팔리던 시절이 아니다. ‘아내가 결혼했다’도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로 장기간 대형서점 순위에 올라있었지만, 실제 판매량은 20만부 남짓이었다. 소설은 20만부 팔려도 베스트셀러가 되지만, 영화는 그 10배 관객이 들어와야 성공으로 가늠된다.

물론 베스트셀러 ‘출신’은 팬베이스 차원보다도 ‘인지도’ 게임에서 우위에 서는 게 사실이다. 책은 안 읽어도 모두가 제목 정도는 들어보게 된다. 예전 같으면 그 정도만으로도 큰 어드밴티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인터넷 중심으로 미디어정보 환경이 바뀌면서, 이제 인지도 게임이란 어느 만큼 빈번히 인터넷에 콘텐츠가 노출되느냐로 조건이 바뀌었다. 베스트셀러 인지도는 하루에 100여개씩 쏟아지는 동일영화 관련 기사들과 별 차이가 없어졌다.

주 관객층이 책을 읽지 않는 세대로 넘어오다 보니 ‘베스트셀러’라는 수식구도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 적어도 티켓을 끊을 수 있을 만큼의 매력은 없다. 결국 ‘아내가 결혼했다’ 영화화는 원작 소설 어드밴티지를 거의 입지 못한 채, ‘제목은 잘 지은 콘텐츠’ 정도로만 시장에서 받아들여졌다.

'아내가 결혼했다'가 지닌 또 다른 마케팅 포인트는 손예진의 출연이었다. 손예진은 확실히 대단한 흥행스타가 맞다. 정확히 말해, 실패작이 거의 없다. 나름대로 흥행 보증수표다. 그러나 손예진의 흥행 보증이란 조금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그녀는 자기 자신으로 콘텐츠를 팔 수 있는 자체발광형 스타가 아니다. 공동 출연한 주연남자 배우를 끌어올려 더 빛나게 만드는 스포트라이트형 스타다. 마케팅 초기엔 '보증수표'격 상징으로서 손예진이 팔리지만, 결국 흥행뒷심을 발휘해 주는 건 남자배우의 매력이다.

그리고 그런 탓에 남자배우 캐스팅은 손예진 영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미 티켓파워를 발휘하고 있거나, 적어도 이제 막 떠오르는 스타로서 각광은 받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스포트라이트 효과가 제대로 난다. 손예진 영화들은 모두 이런 공식으로 성공했다. 티켓파워 배우 선택이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의 차태현,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정우성이었다면, 막 떠오르는 스타 선택은 '클래식'의 조승우, '작업의 정석'의 송일국, '무방비도시'의 김명민이었다.

그러나 '아내가 결혼했다'의 김주혁은 이도저도 아니었다. 그는 좋은 배우가 맞지만, 어떤 식으로건 티켓파워 내지 유사티켓파워를 발휘할 입지가 아니다. 나아가, 김주혁은 손예진과 동일한 스포트라이트형 스타에 가깝다. '싱글즈', '홍반장', '사랑따윈 필요없어'까지 모두 상대 여배우를 빛나게 했다. 같은 스포트라이트가 둘 붙어있으니 화학작용이 나올 리 없다. 개봉 초반은 손예진 파워가 나왔을지라도, 뒷심이 안 따라준다. 아무리 보증수표라도 이런 식이면 부도수표가 되어버린다.

한편, 신세대 취향에 걸맞게 ‘일처다부제’라는 파격적 소재를 선택했다는 점도, 사실 상 현 대중심리로는 악수에 가깝다. 말하자면 ‘걸파워’ 마케팅이다. 극단적으로 흘러간 페미니즘 마케팅이다. 그러나 시장상황은 이런 걸 받아들여주기 쉽지 않다.

결국 ‘아내가 결혼했다’는 데이트무비로 팔았어야 했다. 데이트무비 선택에 있어 여성관객 취향이 상당부분 반영된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다. 갈수록 여성취향으로 흐르는 최근 시장결과도 이를 방증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여성관객 선택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결국 ‘데이트무비’다. 남성 측이 극단적으로 꺼리는 소재라면 최종 선택까지 가기 힘들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남성관객이 꺼릴 만한 요소를 다분히 지니고 있는 영화다.

한국 남성관객은 성(性)담론이나 결혼 등 남녀관계에 있어 파격적 묘사도 잘 받아들인다. 파격적 묘사를 더 즐기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그건 표현상의 문제일 뿐, 근본적 사고베이스는 가부장적으로 잡혀있다. 쉽게 즐기는 성(性)이나 남성에게 편집증적으로 집착하는 여성과의 관계묘사는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지만, 가부장적 남성을 조롱하고 위협하는 설정에는 거부감을 일으킨다.

더 중요한 점은, 그렇다고 ‘아내가 결혼했다’의 일처다부 테마가 딱히 ‘여성용’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티켓을 끊게 만드는 현대 여성층의 동경은 가부장제에 대한 도발이나 극복에 있지 않다. 현대 여성은 ‘소비주의 사회의 승자’가 되길 원한다. ‘된장녀 열풍’의 근본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섹스 앤 더 시티’, ‘가십 걸’ 등이 그렇게 성공했다. 사회윤리를 무시하며 자유롭게 사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나 누리는 풍족한 삶을 원한다.

소설 장르는 일처다부 같은 도발적 소재 하나만으로도 고정 소비층 내에서 팔 수 있지만, 영화는 다르다. 보다 범대중적인 영화 장르는 동경요소를 넣어 팬터지를 충족시켜줘야 팔린다. 결국 ‘아내가 결혼했다’는 어느 쪽 성(性)에도 매력을 던져주지 못하는 ‘데이트무비 아닌 데이트무비’로 소화됐던 셈이다.

마지막으로, 개봉시기에도 문제가 있었다. ‘가을은 로맨스 영화의 계절’이라는 공식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가을은 로맨틱 코미디, 나아가 ‘발칙한’ 로맨틱 코미디의 계절은 절대 아니다. 가을은 전통적으로 최루성 로맨스영화의 계절이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너는 내 운명’, 그리고 지난해 ‘사랑’에 이르기까지 가을영화는 로맨스와 눈물의 적절한 조합으로 이끌어졌다. 어쩌다 코미디로 가더라도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처럼 푸근한 형식이 먹혀 들어간다. 미묘한 차이지만, 시기와 속성을 맞추려면 정확히 맞추는 편이 안전했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이처럼,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는 듯 보였지만, 사실상 모든 것이 안 맞아떨어지는 콘텐츠였다. 실패확률이 애초 높았다. 그 실패를 놓고 한국영화 불신으로 해석해선 절대 안 된다. 오히려 그 반대로 해석해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까지 ‘안 맞아떨어지는’ 콘텐츠도 200만 가까이까지 갈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한국영화 신뢰도고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이다. 절망할 필요가 없다. 용기를 갖되, 계산만 더 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