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간 이란 외교장관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오른쪽)이 12일 평양 만수대 의사당에서 마누체르 모타키 이 란 외교장관과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모타키 장관은 당초 13일 서울을 먼저 방문해 유명환 외교장관과 회담한 뒤 방북할 예정이었 으나, 일정을 바꿔 북한을 먼저 방문했다. 조선중앙통신

북한이 12일 동시 다발적으로 세 종류의 '대남·대미 압박' 카드를 흔들고 나섰다. 군사분계선 육로 통행 제한·차단, 판문점 적십자대표부 폐쇄 및 남북 직통전화 단절, 핵 시료 채취 거부라는 '메가톤급 폭탄'을 이날 하루 9시간 사이에 연달아 투하한 것이다.

개성공단 폐쇄 협박으로 햇볕정책 되찾기?

대다수 전문가들은 북한의 12일 조치를 대남 압박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이전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같은 유화(柔和) 노선으로 바꾸도록 만들려는 의도"(국책연구소 연구원)라는 것이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과 직접 대화하겠다는 오바마 미국 새 행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남한 내에서 대북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많이 나오고 있다"며 "북한은 이 같은 남쪽 내 여론 분열을 이용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노선에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육로 통행 제한 카드의 경우, "개성공단 폐쇄로 가는 전 단계라는 협박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 같다"며 "북한이 과거 핵 문제에서 썼던 '벼랑 끝 전술'을 개성공단에 다시 한번 적용하려는 것"(유호열 고려대 교수)이란 분석이 많다.

북한이 줄기차게 요구하는 6·15와 10·4선언의 전면 이행 등을 남한 정부가 들어주지 않으면 실제 개성공단 폐쇄 카드를 꺼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이번에 1차적 조치란 표현을 쓴 것은 단계적으로 수위를 높여가며 남북관계 경색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려는 의도"라고 했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는 "북한 요구는 결국 과거 '햇볕정책'으로 돌아가거나, 남북관계 전면차단의 책임을 남한이 혼자 짊어지라는 것인데 둘 다 수용하기 힘든 것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 새 정부와 잘 해보려는 북측으로선 당장 공단 폐쇄 카드를 꺼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기대 섞인 분석도 내놓았다.

오바마 행정부 관심 끌기 해석도

반면 이번 조치들을 오바마 미 차기 행정부에 보내는 메시지로 분석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북한이 3개 카드를 동시에 들고 나온 것은 "세계적 경제위기 때문에 후순위로 밀려 있는 북한 문제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끌려는 것 같다"고 했다. 실제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측은 우선 추진할 주요 정책과제를 홈페이지에 소개하면서 북한 핵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미국이 지난달 11일 "시료 채취를 포함한 과학적인 (검증) 절차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는데도, 북한이 이날 '시료 채취'는 합의하지 않았다고 밝힌 것은 다분히 미국을 겨냥한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북한이 핵 검증의 핵심인 시료채취를 거부함으로써 핵 폐기 프로세스에 다시'빨간불'이 켜졌다는 점이다. 이달 말쯤으로 예상했던 6자 회담도 불투명해졌고 내년 1월 오바마 행정부 출범 전까지는 비핵화 2단계(불능화 및 신고)를 대부분 마무리한다는 구상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북한이 12일 꺼내 흔든 카드들은 남쪽을 향해선 이명박 정부를 압박하며 남남 갈등을 유도해 잃어버린 '햇볕'을 되찾겠다는 것이며, 미 오바마 차기 정권에 대해선 "정책 우선 순위에서 우리 문제를 빼먹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복합적인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多)목적용 다(多)연발탄을 터뜨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