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주·엔터테인먼트 부장

현실에서는 처음이지만, 상상력 풍부한 할리우드 영화 몇 편에서는 이미 '흑인 대통령'이 출연했다. '딥 임팩트'의 흑인 대통령(모건 프리먼)은 지구가 대폭발할 위기 상황에서도 침착함과 포용능력, 인류애를 잃지 않는 지도자다. 미국 TV 드라마 '24'에는 오바마와 흡사한 상원의원 출신 팔머 대통령이 나오는데 살해위협과 음모를 결연히 헤쳐 나오는 신념을 가진 인물이다. 둘 다 정말 괜찮은 대통령이다. 반면 '왝 더 독'의 백인 대통령은 소녀 성추행범으로 설정됐고, 드라마 '24'에서 팔머의 후임인 백인 대통령은 무능하기 짝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에서 백인 대통령을 비하·조롱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지만, 존재하지 않은 흑인 대통령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흑인 대통령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역(逆)으로 영화 속 '멋진 흑인 대통령'을 가능케 한 요인이 된 것이다.

이제 현실에서 흑인 대통령이 나왔다는 사실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소수자 배려'의 특혜가 사라지게 됐음을 의미한다. 이제부턴 그 역시 비판의 칼날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니까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은 차별 없는 세상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

이런 상상을 해보자. 어떤 회사에 여성 사장이 취임했다. 그러자 여직원들이 모여서 수유실 설치, 육아휴직 확대 등 각종 '여성 권익' 향상책을 주장하고 나왔다. 회사의 간부는 이렇게 말할 확률이 높다. "우리 회사는 여자 사장까지 나온 회사야. 그런데 뭘 더 해달라는 거야? 남자 직원들 불만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그럴듯한 모자를 썼다고 해서 아랫도리까지 따뜻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은 오히려 소수자 우대정책,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의 존폐 논란을 더욱 부채질할 것이란 게 미 언론의 전망이다. 이미 캘리포니아, 미시간, 워싱턴 등에서 주(州) 정부 차원의 소수자 우대정책을 폐지했고, 이번 선거와 같은 날 치러진 네브래스카주 주민제안투표에서도 우대정책 폐지가 가결됐다. 좀 과장되게 말하면 흑인 여대생이 '오바마 대통령' 때문에 공무원 선발에서 '가산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더 자주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오바마가 똑 부러지게 의견(우대정책 찬성)을 표명해야 한다"는 흑인운동가들의 반박이 나오면서 미국에서는 지금 우대정책 폐지를 두고 찬반양론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탄생 신화'의 후속편이 날카로운 현실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이번 미 대선의 또 다른 의미이다.

사실 '역사적 대통령'은 우리도 가져봤다. 특정지역 출신 대통령, 고졸 대통령, 다들 멋진 '탄생 신화'를 가진 대통령이다. 그러나 그 새로운 대통령들의 '탄생 신화'는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편견도 단단했지만, 자기를 지지해준 층을 용기 있게 넘어서서 더 큰 통합을 이루는, '아름다운 배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천에서 난 용'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게 바로 그 '개천'이라는 속설을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의 오바마'가 나와서 성공에 이르게 하려면 우리는 좀 더 '쿨'해져야 한다. 열렬한 지지자라면 그가 '꿈'을 이루는 순간 그를 놓아줘야 한다. 지도자는 지지자에게 진 빚을 '국민'이라는 집단에게 변제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문제다. 앞서 길을 걷고 있는 오바마가 자기 지지층을 넘어서 차별도, 역차별도 없는 순정(純正)하게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 그래서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