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스님(왼쪽)과 현공 스님.

전남 해남 땅끝마을 미황사가 최근 20년에 걸친 중창불사를 마무리하고 오는 18일 잔치를 연다. 미황사의 중창불사는 현재 회주인 현공 스님과 주지 금강 스님이 20년에 걸쳐 릴레이로 역할분담을 하면서 완성한 '21세기형 불사(佛事)'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2일 서울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진 현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은 "현공 스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말했다. 금강 스님이 미황사에 첫발을 들여놓은 것은 지난 1989년이었다. 은사인 지운 스님을 모시고 찾은 미황사는 전(前) 주지 스님이 석 달 전에 떠난 후 거의 버려진 절이었다. 알고 보니 미황사는 1887년 중창불사를 위해 각 지역으로 탁발을 다니던 스님들로 구성된 풍물패를 태운 배가 난파하면서 스님들이 대부분 익사한 사건이 있었다. 그 후로 거의 100년을 폐사나 다름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미황사에 머물며 탁발도 하고, 직접 지게 지고 돌을 주워 담을 쌓던 그는 현공 스님을 떠올렸다. 자신이 고교시절 대흥사로 출가했을 당시 막 제대해 절에서 밥을 지어주던 현공 스님의 꼼꼼함이 생각난 것이다. "6개월만 와있어 달라"는 금강 스님의 간청에 1992년 주지를 맡은 현공 스님은 결국 10년간 주지를 맡으며 사찰의 면모를 일신했다. 전국의 목재상을 직접 발로 뛰며 대웅보전(보물 947호) 주변 석축 보수를 시작으로 각 전각을 복원·개축했다.

선배인 현공 스님에 절을 부탁하고 전국의 선원을 다니며 수행에 열중하던 금강 스님이 다시 미황사로 돌아온 것은 2000년이었다. 현공 스님으로부터 "잠깐 다녀가라"는 전갈을 받고 갔더니 마을 여신도가 "주지 스님 어서 오시라"며 반겼다. 이렇게 주지로 부임한 금강 스님은 새 단장한 하드웨어에 수행이라는 날개를 달았다. 전통 강원(講院) 시스템을 응용,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한문학당〉을 개설한 것이 시작이었다. 한문학당(29회)에 960명, 참선수련회(29회) 435명, 템플스테이 매년 4000명 등이 땅끝까지 찾아오는 등 인기는 대단했다. 금강 스님은 "1980년대엔 관광, 90년대엔 문화답사였다면 2000년대엔 체험, 그 중에서도 수행이 각광 받을 것"이라며 "다른 사찰에도 도움이 되도록 불사와 수행 프로그램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겠다"고 했다. 120년 동안 미뤄졌던 미황사 중창불사를 마무리 짓는 잔치인 괘불제는 18일 오후 1시부터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