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평생 가장 기쁜 날이었다. 제2회 세계 한인의 날 행사가 있던 2일 오전 재일교포 진창현(79)씨는 정부로부터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그는 '동양의 스트라디바리'로 불리는 바이올린 제작의 명인(名人), 전 세계 5명밖에 없는 '무감사(無鑑査) 마스터메이커'로 그의 '진 공방'에서 제작된 바이올린은 한 대에 150만엔(약 1730만원)을 호가한다.

"재일교포가, 경제인이 아닌 장인(匠人)이 모국에서 훈장을 받는다는 건 상상 외의 일이었어요. 기쁘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됩니다. '충격'입니다."

경북 김천 출신인 그는 14세 때 가난으로 중학교를 중퇴하고 일제의 강제 징용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변소 치는 일을 비롯, 안 해 본 것 없이 돈을 벌어 고학으로 메이지대학 야간부를 마쳤다.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꿈을 이루지 못했다. "앞길이 막막했는데 마침 학교에 유명한 물리학자 이토가와 히데오 교수가 강연을 오셨어요. 주제가 '명기(名器) 스트라디바리우스 연구'였죠. 강연의 말미에 그분이 말씀하셨어요. '20세기 최첨단 기술로도 300년 전 명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재현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소리는 인류의 수수께끼다. 나는 이제 그 연구를 그만두고 차라리 달에 가는 로켓을 연구하겠다.'"

‘동양의 스트라디바리’로 불리는 바이올린 제작의 명인 진창현씨가 2일 정부로부터 수여받은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들어보이고 있다. 그는“5년 내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능가하는 바이올린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강의가 끝나자 그는 결심했다. '저것이야말로 할 일이 없는 내게 적합한 일이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재현해 내야지.' 어린 시절 동네를 찾아오던 약장수의 바이올린 소리에 반해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다가 아버지로부터 불호령을 듣곤 하던 그였다. 자신을 매료시켰던 그 소리가 나는 악기를 직접 만들 생각을 하니 설렜지만 길은 험난했다. 한국인이기 때문이었다. 도쿄의 그 어떤 바이올린 장인도 그에게 기술을 가르쳐주려 하지 않았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나고야의 큰 바이올린 공장 옆에 판잣집을 짓고 제작 과정을 훔쳐보며 혼자 바이올린 만드는 법을 익혔다.

스물여덟 살 때 마침내 첫 바이올린을 만들었다. 1976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국제악기제작 콩쿠르에서 그의 바이올린은 총 6개 부문 중 5개 부문에서 금메달을 휩쓸었고, 이윽고 강동석·정경화·로스트로포비치·아이작 스턴 등 세계의 수많은 명연주자들이 그의 바이올린을 찾기 시작했다. 역경을 이겨낸 그의 이야기는 일본 TV드라마와 만화로도 제작됐으며, 올 초엔 'The Mystery of the Violin(바이올린의 신비)'이란 제목으로 일본 고2 영어 교과서에도 실렸다.

"일본 사람들이 제게 묻죠. 당신의 바이올린은 어떻게 그런 소리를 내느냐고. 나는 우스개로 답하지요. '고춧가루·마늘을 많이 먹어서 그렇다'고. 그러나 나는 알고 있어요. 내가 재일교포라서 그런 감성을 지닌 소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내 소리는 타국에서의 갖은 설움과 고통, 절망의 벽을 뚫고 살아내야만 하는 소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