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도쿄특파원

지난 3일 거주지인 도쿄 스기나미(杉竝) 구청에서 이런 일을 겪었다.

지난 7월 한국에서 출생한 아기를 일본에 데려와 외국인 등록과 건강보험 가입을 마친 뒤였다. 먼저 2층 국보연금과를 방문했다. 사전 통지를 받은 대로 건강보험증, 모자건강수첩(산모가 일본에서 발급받은 수첩), 통장과 도장을 내놓았다. 담당 직원이 "한 달 안에 계좌로 35만엔(약 385만원)이 입금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이 지급하는 '출산육아 일시금'이다.

다음엔 3층 육아지원과를 찾았다. 역시 통장과 도장을 제출하자 "매달 1만엔(약 11만원)씩 아동수당이 입금될 것"이란 통보를 받았다. 동시에 이미 발급받은 건강보험증과 별도로 '의료증'이란 아기 이름의 주황색 증명서를 받았다. 의무교육까지 아이의 의료비 중 자기 부담분을 정부가 지급한다는 증명서였다. 중학생까지 공짜로 병원에 다닐 수 있다는 얘기다.

담당 공무원 안내로 옆 창구를 찾았다. 이번엔 '육아 응원권(應援�)'이라고 적힌 쿠폰북을 줬다. 장당 500엔, 모두 120장이니 6만엔(약 66만원)어치였다. 만 세 살까지 1년에 120장, 이후 다섯 살까지 60장이 지급된다고 했다. 안내서를 보니 응원권은 탁아(託兒) 서비스·마사지·지압 등 산모의 산후 조리, 아이와 함께 하는 영어·음악·요리 등 학원 강습, 연극·콘서트 감상에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다음은 구청이 운영하는 보건센터를 찾았다. 역시 모자수첩과 통장, 도장을 제출하자, "산모건강진단 지원금을 입금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초음파 검사처럼 산부인과를 이용하면서 개인적으로 지급한 비용을 환급해 주는 것이다. 1회당 5000엔(약 5만5000원)씩, 최대 12회까지 지원했다. 이미 병원에 지급한 영수증을 보니 1회당 5500엔. 검진 비용의 90%를 일본 정부가 대신 내주는 셈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이날 구청에서 받은 안내장을 살폈다. 그 가운데 '의료비 지원 신청서'라는 서류를 발견했다. 이미 지급한 의료비가 있으면 환급을 신청하라는 것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구청에 전화를 걸어, "산모가 한국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는데 이 비용도 환급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뜻밖에 "일본의 보험 대상에 해당되는 의료비 부분은 지급할 수 있으니 한국 병원에서 서류를 발급받아 제출하라"는 답을 들었다.

이와 함께 한 달 전에 스기나미 보건소가 집으로 보낸 '출생통지표'도 우편으로 보냈다. 통지표가 접수되면 보건사(保健師)와 조산사(助産師)가 정기적으로 집을 방문해 아기의 성장, 건강에 대한 점검과 상담을 시작한다. 핵가족으로 사라진 가정에서의 할머니 역할을 정부가 대신해 주는 서비스라고 한다.

지난 3일 겪은 것은 아기를 낳은 보통 일본인과 똑같은 경험이었다. 외국인이라고 더도, 덜도 없었다. 그래서 도쿄에 파견된 한국 기업인, 공무원, 유학생들은 "가족 중에 일본에서 돈 버는 사람은 아이들"이란 이야기를 한다. 한국에서 돈을 가져다 쓰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일본에서 '밥벌이'를 한다는 우스갯소리지만, 일본의 육아지원 시스템에 대한 부러움이 배어 있다.

경제력이 다른 일본과 한국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정부 살림인 재정 상황을 보면 훨씬 여유가 없는 쪽은 1038조엔(약 1경1400조원·2007년 말 현재)의 빚을 안고 있는 일본 정부일 수도 있다. 그래도 노인 복지를 줄이라는 여론은 있어도 육아 지원을 줄이라는 여론은 없다. "돈 퍼붓는다고 많이 낳느냐?"라는 반론도 없다. '저출산은 망국(亡國)의 문제'라는 강한 공감대 때문이 아닐까 한다. 물론 한국은 일본보다 심한 저출산 국가다. 나름대로 열심히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갈 길이 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