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웅섭·前서울경찰청장

수천 명의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하며 폭력을 휘두르고 있을 때, 그 뒤에는 발이 묶이고 생업을 걱정하는 수만·수십만 명의 시민이 울분을 토하고 있다. 이 광경을 뉴스를 통해 바라보고 있는 수백만 명의 국민은 실의와 원망으로 경찰의 무력과 정부를 탓하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처한 실상이다.

경찰은 원래 불법과 폭력을 다스리지 못하는 그런 허약하고 무력한 존재가 아니었다. 막강한 인력과 장비, 거기에다 공권력을 갖춘 힘이 강한 조직이었다. 다만 그 힘을 쓰는 데 신중을 기해 왔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시가전을 방불케 하던 지난날 경찰의 시위진압 최후의 수단은 최루탄 발사였다. 그러나 국민도, 시위대도, 쏘는 경찰도 최루탄을 싫어했다. 그래서 '무석무탄(無石無彈·시위대가 돌을 던지지 않으면 경찰도 최루탄을 쏘지 않는다는 뜻)'이란 신조어도 나왔다. 경찰은 최루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몸으로 막는 '인내 진압'을 선택했다.

하지만 시위대가 자제력을 잃고 폭력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경찰은 '설마 여경까지 때리겠느냐'는 판단에 '여경 폴리스 라인'으로 대응했다. 시위대는 여경도 무참히 폭행했다. 그래서 경찰버스로 차 벽을 쌓아 차단했다. 그러자 시위대는 경찰차에 불을 질렀다. 부득이 물대포를 쐈다. 일부 정치집단과 언론은 '과잉진압' '폭력진압'이라고 온통 경찰에 비난을 쏟아 부었다. 급기야 시내 한복판에서 경찰이 옷을 발가벗긴 채 매를 맞고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다음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이제는 한계상황에 이르렀다. 여기서 경찰이 더 이상 밀리면 방법이 없다. 군이 대신할 수도 없고, 그것은 우리 모두의 비극이다. 경찰은 '인내 진압'의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경찰은 그동안 간직해 두었던 '강한 공권력'을 꺼내 들고 엄정하게 행사해야 한다. 강한 공권력 행사는 경찰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강력한 공권력 확립이야말로 국민을 위한 최상의 봉사'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경찰은 지난날 '범죄와의 전쟁'을 치르던 그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적어도 폴리스 라인을 자발적으로 엄격하게 지키는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놓아야 한다. 경찰의 뒤에는 나라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국민과 새로운 정부가 경찰을 성원하고 보호하며 지켜줄 것이다.

1993년 당선된 줄리아니 뉴욕시장이 불법이 판치는 뉴욕 치안을 바로잡기 위해 사소한 경범죄 추방을 강력하게 벌였다. 처음에는 비난을 쏟아냈던 시민들이 자진 참여하여 오늘의 평온한 도시가 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경미한 범죄를 무섭게 다루어야 기본질서가 잡히고 큰 범죄가 예방된다는 줄리아니 시장의 확신을 국민과 경찰 모두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불법·폭력 척결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서 경찰 지휘부는 시위현장의 경찰관들과 지휘관을 적극 보호하고, 때로는 이들을 위해 투쟁도 불사해야 한다. 진압 과정에서 불상사가 발생하더라도 정당한 법 집행인 이상 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문책해서는 안 된다. 일선 경찰이 주저하지 않고 단호하고 과감하게 법 집행을 할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심어줘야 한다.

법은 법대로 집행해야 한다. 불법과 폭력은 처벌의 대상이지 결코 흥정이나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지난날 경찰이 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이 부메랑이 되어 오늘날 경찰을 겨누고 있는 것이다.

군은 외부의 입김이나 간섭 없이 당당하게 작전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제 경찰의 정당한 공권력 행사도 이처럼 의연하고 당당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