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규형

역대 대통령 평가에서 늘 말석을 차지하는 인물이 이승만이다. 필자도 대학시절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악의 화신'으로 생각했다. 당시 풍미하던 '사회과학' 서적들의 수정주의적 해석에 영향을 받아 그를 '나라를 망친 독재자'이자 '분단의 원흉'으로 평가했다.

물론 그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했지만 통치스타일은 권위주의적인 독재자였다. 독선적이고 권모술수에 능한 인격적인 결함도 있었다. 게다가 너무 노년에 대통령이 됐는데도 장기집권을 했다는 근본적인 문제도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런 허물을 훌쩍 뛰어넘는 공이 있었다.

일단 '건국대통령'으로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힘들기 짝이 없던 건국과정에서 역할이 컸다. 해방 이후 많은 신생국 지도자들이 인기 영합적인 좌파 민족주의 노선을 걸어갈 때 그는 세계정세를 냉철하게 보는 혜안(慧眼)을 갖고 냉전체제하에서 자유주의적 해양 문명을 지향하는 올바른 진로를 잡았다. 대내적으로는 현대적 국민국가의 기틀을 잡았고, 6·25 이후 한미동맹을 통해 국가안보의 기초를 세웠다.

특히 책임있는 자영농을 육성한 농지개혁은 세계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성공작이었다. 6·25가 일어났을 때 박헌영이 장담한 '민중봉기'가 일어나지 않은 것은 농지개혁 덕이 컸다. 또한 의무교육제도 도입 등으로 대부분 문맹이었던 국민을 교육시켜 시민으로 만들었다. 교육된 국민들은 더 이상 이승만 체제에 만족할 수 없었기에 이승만은 자기 성공의 제물이 돼야만 했다.

내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건국6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학술회의가 열린다. 이제는 이승만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질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