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관·한국문학번역원장·덕성여대 교수

문학작품은 쓰기도 어렵지만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일도 쉽지가 않다. 외국문학을 한국어로 옮기든 한국문학을 외국어로 옮기든 마찬가지다. 물론 두 작업에 좀 다른 성격이 있고 한국인에게는 후자가 더 어려워 보이지만, 각 민족어가 최고로 구현된 문학작품을 번역하는 일은 단순히 두 언어를 옮기는 것 이상의 언어감각과 문화에 대한 이해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문학번역에 대해서 늘 잘잘못에 대한 평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새삼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최근 한국문학의 번역 수준이 도마에 올랐고 필자가 봉직하는 기관의 번역평가사업 결과 발표로 그것이 초래되어서이다. 이 평가사업은 197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문학의 영어 번역본 수준을 전체적으로 점검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설정하자는 것이다. 전에 없던 일이라 관련 학계, 출판계의 관심도 컸고, 위촉된 국내외 위원들도 공정한 평가를 위해서 노심초사 애쓴 것으로 안다.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실망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평가대상 작품 41편 가운데 수준급의 번역은 7종에 불과했지만, 꽤 잘 된 번역이 14종으로, 이 둘을 합하면 반 수 이상의 작품이 읽을 만한 번역본을 가진 셈이다.

해석은 두 가지로 갈렸다. '엉터리가 반이나 되는구나'와 '괜찮은 번역이 반은 되는구나'가 그것이다. 역점을 어디다 두느냐에 따라 한국소설 영역본의 운명이 결정되는데, 필자로서는 일단 후자에 역점을 두고 싶다. 왜냐하면 그간 거의 흉흉하다시피 번역 수준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이다. 미국 강단의 교수나 전공자로부터 교재로 쓸 만한 한국문학 번역서가 없다는 푸념을 수도 없이 들었고, 한 미국 서부 유명대학의 사서로부터는 중앙도서관에 구비할 만한 번역서가 없다는 야박한 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엄정한 평가의 결과 그래도 번역된 작품의 경우는 잘 고르면 꽤 괜찮은 번역이 있고 도서관에 납품할 도서를 찾아낼 수도 있음이 입증된 것이다.

이 번역 평가 결과를 공개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지만 언론의 반응은 "한국소설의 영어번역, 문제 많다"는 쪽으로 쏠렸다. 필자는 맡은 일이 일인지라 국내 초유의 이 총체적 점검의 의미를 더 사주기를 바랐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어쩌랴! 왜 한국문학 번역을 관장하고 있는 공 기관이 스스로 이런 현실 분석을 하고 불가피하다면 매도 맞을 각오까지 했을까 하는 그 참뜻이 이해되기를 바라는 수밖에. 번역원이 이 사업에 착수한 것은 국내외에 팽배한 번역의 질에 대한 불만을 있는 그대로 검토하고 한국문학 번역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40년간의 번역물의 수준을 번역원이 다 책임질 이유는 없지만, 적어도 문제를 파악하고 어떻게 개선해 나가느냐는 책무는 주어져 있으니까.

한국문학의 해외진출은 최근에야 비로소 본격적인 단계에 접어들었다. 몇몇 작가의 작품들은 해외에 판권이 팔리고 전에 없이 활발한 교류도 이루어진다. 그동안의 번역의 성과이기도 하다. 이제 한국문학도 외국문학에 우리가 그리 하듯이 현지 번역가와 출판사의 자발적인 참여를 끌어내야 할 과제 앞에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 작가들은 해외에 널리 알려지지 못했고 해당국의 번역가도 크게 부족하다. 이런 현실을 그냥 두고 한국문학이 홀연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아직은 더 많은 번역 지원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외국인 번역가를 양성하고 대폭 늘려 가야 할 시점이다. 한국문학의 세계화는 지금부터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