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화탄소(CO2)가 세상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겨울은 따뜻하고 짧아지는 대신 여름은 점점 길어지고 있다. 기상재앙은 더 이상 이변(異變)이라고 부르는 게 이상할 만큼 전 세계에서 빈발하고 있다. 인류가 산업혁명 이후 200여 년을 화석연료에 의존해 온 바람에 지구 대기에 온실가스인 CO2가 대량 축적되면서 지구의 체온이 크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로 머지않은 장래에 동식물의 대량 멸종 사태가 닥칠 것"이란 경고와 함께 인류문명의 절멸 위기까지 거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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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2가 바꾼 일상의 풍경들

인류의 대응도 이미 시작됐다. 특히 일상 생활에선 의식주 전 영역에서 CO2가 만든 변혁의 움직임이 뚜렷한 상태다.

CO2를 배출하는 화석연료를 냉난방 용도로 전혀 쓰지 않는 '탄소제로' 주택의 양산(量産) 모델도 나왔다. 영국에서 가장 큰 주택건설업체 가운데 하나인 '바라트(barratt) 개발'은 최근 3층짜리 가정용 주택의 모델을 공개〈그래픽 참조〉했다.

이 주택은 남향(南向) 지붕 위에 태양전지판을 얹은 것을 비롯, 여름에 실내 온도가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갈 경우 자동셔터 방식으로 창문이 저절로 열리도록 설계됐다. 공기 열 펌프는 공기에서 열을 뽑아서 난방을 하거나 물을 데우게 된다. 에어컨과 정반대 기능을 하는 것이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도록 단열 효과가 큰 중량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유리창은 삼중창을 사용했다. 영국정부는 2016년부터 새로 짓는 모든 주택에 대해 '탄소제로'를 달성하도록 의무화했다.

CO2는 자동차 구매에도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 정부는 CO2 배출량이 많은 차를 구입하는 사람에게는 취득세 등 명목으로 차값을 최대 2600유로(약 421만 원)까지 더 물리고, CO2 배출량이 적은 차를 살 경우 최대 5000유로(약 810만 원)를 환급하는 정책을 올 1월부터 시행 중이다. 우리나라도 현재 이 방식을 도입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캐나다 밴쿠버 시는 인센티브 방식을 쓰고 있다. "쓰던 차를 하이브리드 차로 바꾸면 현금 2000달러를, CO2를 많이 배출하는 중고차를 새 차로 업그레이드하면 1500달러의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있다"고 국민대 탁광일 교수(산림자원학과)는 전했다. 차를 더 이상 몰지 않기로 결정할 경우 18개월 동안 대중교통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승차권이 지급된다고 한다.

따뜻해지고 짧아진 겨울은 우선 패션 트렌드와 의류업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올 1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2008년 가을·겨울 패션쇼'에서는 모피와 두꺼운 스웨터 같은 소재는 사라진 대신 얇은 옷을 여러 겹 겹쳐 있는 레이어드룩(layered look) 같은 옷들이 대거 선보였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김현진 교수는 "따뜻한 겨울이 계속되면서 모피가 패션쇼의 주역에서 밀려난 것"이라고 풀이했다. 여름엔 "넥타이를 풀어 시원한 옷차림으로 지내자"는 '쿨비즈 패션'도 최근 고유가 상황과 맞물려 국내에서 갈수록 확산 중이다.

■"온난화 전쟁이 시작됐다"

경제분야 역시 CO2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실제 국제 경제체제는 CO2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돼 가는 중이다.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김영호 한국사회투자포럼 이사장은 "냉전 즉, 콜드 워(Cold War)는 끝났지만 이제 웜 워(Warm War), 온난화 전쟁이 시작됐다. 미국 전 부통령 앨 고어의 말처럼 지금은 환경운동의 시대가 아니라 '환경 전쟁'의 시대"라고 말했다.

물론 이 '따뜻한 전쟁'의 주범은 CO2다. 김 이사장은 "CO2가 세계 경제의 혁명적 변화를 촉발시켜 이제는 CO2가 모든 경쟁의 기본이 되는 'CO2 본위(本位)제' 시대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기업들은 'CO2 줄이기'와 'CO2로 돈 벌기'에 골몰하고 있다. CO2 감축 실적을 개별 기업의 자산으로 인정해 이를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게 한 청정개발체제(CDM), 배출권거래제(ET) 등을 새로운 성장의 동력으로 꼽고 있는 것이다. 실제 '탄소시장(carbon marcket)'은 빠른 속도로 급팽창하고 있다. CO2 배출권을 서로 사고 파는 세계 탄소시장의 규모는 2006년 312억 달러에서 작년엔 640억 달러로 두 배 이상 치솟았다. 세계은행은 "2010년엔 시장규모가 1500억 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CO2 거래가 2년 뒤엔 세계 반도체 시장규모(2007년 현재 2689억 달러)의 절반 이상으로 팽창하게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10년 후면 CO2 배출권이 지금의 주식처럼 거래될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전 세계 탄소배출권 물량의 80%가 유럽의 탄소시장에서 거래됐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거래 통화기준은 당연히 달러가 아닌 유로였다. 적어도 탄소시장에 관한 한 세계 기축통화가 달러에서 유로로 바뀐 것이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김현진 교수는 "유럽연합(EU)이 오래 전부터 탄소시장의 글로벌화를 추진해 온 전략의 결과"라며 "미국은 아직 탄소시장을 열지 않고 버티고 있지만 결국엔 EU가 주도하는 체제에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중앙대 김정인 교수(산업경제학과)도 "탄소시장을 통해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영국을 필두로 한 EU의 전략이 착착 맞아떨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