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정치적 성향은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어 있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보수주의자 또는 진보주의자, 우파 또는 좌파가 되는 것이 타고난 운명이라는 뜻이다.

2003년 미국 뉴욕대 심리학자 존 조스트는 '미국 심리학자(American Psychologist)'에 12개국 2만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88개 연구를 분석해 성격과 정치적 신조의 관계를 밝히는 논문을 게재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성격의 다섯 가지 특성인 개방성, 성실성, 외향성, 친화성, 정서 안정성 중에서 앞의 세 가지 특성은 정치 성향과 깊은 관계가 있었다. 개방적인 성격의 소유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자유주의자가 될 확률이 두 배 정도 높았다. 보수주의자들은 간단명료한 노래나 그림을 선호했다.

2005년 미국 라이스대 정치학자 존 앨퍼드는 '미국 정치학 평론'(APSR)에 정치 성향이 유전에 의해 결정된다는 논문을 기고했다. 이 가운데 3만 명의 쌍둥이에게 정치적 견해를 물은 자료도 포함돼 있다. 유전자 전부를 공유한 일란성 쌍둥이가 정치적 질문에 대해 유전자의 절반을 공유한 이란성 쌍둥이보다 동일한 답변을 더 많이 한다는 것이다.

작년 8월 캘리포니아대 정치학자 제임스 파울러는 미국정치학회(APSA) 모임에서 선거일에 투표하러 갈지 아니면 기권할지를 결정하는 문제는 몇몇 유전자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했다. 일란성 쌍둥이 326쌍과 이란성 쌍둥이 196쌍의 투표 기록을 분석한 결과 유전적 요인이 투표 행위에 미치는 영향은 60%이고 환경적 요인은 40%였다는 것이다.

파울러는 투표 행위에 관련된 유전자 2개도 찾아냈다. 이 유전자들은 뇌 안의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분비를 조절하는 데 관여한다. 세로토닌은 신뢰와 사회적 상호작용에 관련된 뇌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세로토닌을 잘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사교적이 된다. 이러한 사람들은 선거일에 투표장에 나갈 가능성이 여느 유권자들보다 1.3배 높았다.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

한 달 뒤 뉴욕대 심리학자인 데이비드 아모디오는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온라인 판에 게재된 논문에서 사람마다 정치 성향이 다른 까닭은 뇌 안에서 정보가 처리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아모디오는 43명에게 보수주의자인지 자유주의자인지 정치적 입장에 대해 질문하고 두개골에 삽입한 전극으로 전방대상피질(ACC: anterior cingulate cortex)의 활동을 측정했다. ACC는 의견이나 이해관계의 충돌을 해결하는 기능을 가진 부위이다. 자유주의자의 뇌에서 이 부위가 보수주의자보다 2.5배 더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누구나 정치적 소신을 타고난다면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유권자의 성향을 고려하지 않고 덤비는 선거운동의 효과가 의문시된다. 우파와 좌파의 대결이 숙명적이라면 정치는 타협이나 양보의 예술이 되어야 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