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11시 30분쯤 이원표(59)씨가 모는 택시에 한 30대 남자가 올라탔다. "정발산역 쪽으로 가주세요." 이씨는 '장거리 손님'을 만났다고 내심 기뻐했다. 그 손님을 태워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경기도 고양시 정발산역까지 가면 최소한 2만5000원은 벌 수 있었다.

그러나 이씨의 '행운'은 출발하자마자 종로에서 끝났다. 시위대 약 1만 명이 종로1가 광화문우체국 앞의 왕복 8차선 도로를 점거하고 있었다. 도로는 종로4가부터 정체되더니 종로3가를 지나면서 아예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결국 손님은 종로2가를 앞두고 "차라리 지하철을 타겠다"며 차에서 내렸다.

◆점거된 도로, 들끓는 택시 기사

서울 시내의 야간 주요 도로가 시위대에 점거된 지 7일째. 영업용 택시기사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시위대가 매일 밤 황금시간대에 도심 도로를 막고 있는 탓에 수입이 확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전국운수산업노조에 따르면 서울 지역 회사택시 기사들의 월평균 수입은 125만원. 4인 가족의 한 달 최저생계비(120만원)를 겨우 넘는 수준이다. 연일 계속된 시위로 이 수입마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내 수중에는 돼지고기 살 돈도 없는데, 미국 쇠고기를 수입한다고 시내를 마비시켜야 합니까?"

30일 오후 1시쯤 동대문구 이문동의 '모범운전자회'에서 만난 개인택시 기사 김기충(58)씨는 '시위' 얘기가 나오자마자 언성을 높였다. 그는 "밤에는 20분에 1만원도 벌 수 있는데 시위 때문에 이번 주를 완전히 공쳤다"며 "정말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이라도 뿌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29일 자정쯤 숭례문 앞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도 시위대 얘기가 나오자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하루 9만원을 회사에 사납금으로 낸다고 했다. 하지만 시위대가 심야 서울 중심부 도로를 장악한 뒤 하루 벌이가 5만~6만원 선으로 떨어졌다. 그는 "하루 13시간을 일하고도 사납금을 채우지 못해 내 돈으로 채워 넣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납금을 다 채워야 수당을 합쳐서 한 달에 90만원 정도 월급을 받는다. 사납금을 채운 뒤 남는 벌이가 택시기사 몫인데, 심야 시위가 시작된 뒤로는 사납금까지 자기 돈으로 채워야 하기에 시위가 이대로 계속되면 한달 수입이 70만~80만원으로 떨어질 위기라는 것이다.

그는 요즘 택시기사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전했다. "어제 저녁 기사식당에서 뉴스에 시위대 모습이 나오니까 한 택시기사가 TV를 향해 종이컵을 집어던지더군요. '방송이 왜 저런 걸 부추키느냐'면서요."

개인택시 기사 차명식(56)씨는 "시골의 친형도 한우를 키우지만 도로를 점거하는 시위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국민 입장을 대변한다고 뛰쳐나온 시위대가 택시를 몰아 근근이 먹고 사는 사람들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30일 오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시민 4000여명(경찰 추산)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집회를 마친 뒤 거리시위에 나섰다. 시위대에 막혀 택시가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을지로와 명동 등을 거쳐 서울광장 앞 대한문 앞에서 광화문 쪽으로 나아가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대치했다.

◆"황금시간 다 빼앗겼다"

택시기사들이 이렇게 들끓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시위대가 '황금시간대'와 장소를 점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택시기사들이 '황금시간대'로 꼽는 시간은 밤 10시~새벽 2시. 장거리 손님이 많은 데다, 교통정체도 심하지 않아 손님을 여러 번 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장거리 손님을 태우고 할증요금까지 받으면 1시간에 수만원 벌이도 가능하다. 그 중에서도 종로2가, 명동 입구, 을지로 1가, 충무로 같은 곳은 특히 장거리 손님이 많은 '포인트'다. 그런데 일주일째 시위대가 '황금시간대'와 주요 '포인트'를 모두 점거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택시를 모는 배현태(46)씨는 "심야 종로 일대는 '돈다발'이나 마찬가지인데 들어가지 못하니 하루 3만~5만원을 덜 버는 셈"이라고 말했다.

택시기사 가운데서도 시위대에 공감한다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30일 오전 11시쯤 종로1가에서 만난 개인택시 기사 최한기(55)씨는 "차가 밀리면 분통이 터지지만 정부가 너무 국민들 마음을 생각하지 않고 옛날식으로 밀어붙여서 생긴 일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러나 도심 불법시위는 우리 사회의 '서민'인 택시 기사에게 엄청난 생계 압박을 가하고 있다. 막대한 사회적 비용도 초래하고 있다. 2006년 KDI는 "종로에서 도로를 점거한 불법 시위·행진을 벌였을 때 발생하는 교통지체 비용과 근처 영업점 손실, 투입경찰 비용, 국민의 심리적 부담 등을 합친 사회적 비용이 1회당 683억원"이라는 연구 보고서를 내놓았다. 광화문 점거 집회 비용은 776억원으로 추산했다. 7일간 계속된 청계광장 촛불집회에 이은 광화문·종로·을지로·퇴계로 등 불법 차로 점거 시위만으로 최소한 1조원 이상의 사회적 대가를 치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