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관계자는 11일 기자들에게 '느닷없이'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을 했다. 기자들의 질문이 없었는데도, "우리는 북쪽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 (북한이)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과 직거래를 통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통미봉남 전략으로 나온다면 그건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 속에는 최근 북핵 해결의 급진전과 미·북 간의 잦은 접촉을 보는 이명박 정부의 시각이 담겨 있다. 한반도 상황이 급변하고 있는데, 자칫하면 한국만 소외될 수 있고 이 경우 안팎의 비판이 쏟아질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국제기구를 통해 대북(對北) 인도적 식량지원을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선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남북관계가 사실상 단절된 상태에서 북한에 직접 식량을 지원할 수 없고, 올해 북한의 식량난이 최근 어느 때보다 심각한 만큼 '인도적 지원'의 차원에서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북한을 우회 지원하는 방식으로 남북 관계의 물꼬를 트겠다는 생각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대북 지원 원칙으로 "인도적 지원은 조건 없이 하되, 북한의 요청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방침을 내걸었다.

이 대통령과 김하중 통일부 장관 등이 공개적으로 여러 차례 이 같은 방침을 밝혔었다. 그러나 북한은 이명박 정부를 향해 "역도"라는 비난을 퍼부을 뿐, 지원을 요청하는 손길을 내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국제기구라는 우회로를 통한 대북 식량지원에 나서는 것은, 자칫하다간 한국이 한반도 상황 변화의 방관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 의식 때문이다. 이미 미국 정부는 북한에 50만t 규모의 식량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북측과 이에 필요한 현장 감시요원 파견 문제 등 실무 협의를 하고 있다. 대북 식량 지원은 북핵 해결 국면과 맞물려 해빙(解氷)의 중요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최근 정부 관계자들이 "원칙만을 고집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한 것도 이런 상황 변화를 의식한 것이다. 정부는 일단 13일부터 워싱턴에서 미국 측과 대북 식량 지원 문제에 대해 협의할 계획이다.

올해 북한의 식량 사정은 최근 10년 이래 최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일각에선 "5~6월에 20만~30만 명의 아사자(餓死者)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이런 절박한 북한 식량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가 내미는 지원의 손길이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