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그레 상기된 얼굴로 자기 삶의 가장 행복했던 한 순간을 회상하는 이의 목소리는 얼마나 듣기 좋은가? 가령 '소녀시절'이란 없었을 것 같은 억척 아줌마가 여학생 때 좋아했던 선배 얘기를 할 때, 중년의 아들이 가난 때문에 나이 지긋해서야 처음으로 가족여행을 간 자신의 아버지를 회상하면서 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그 행복감을 묘사하려 애쓸 때, 그 말들은 따사롭게 듣는 이를 감싼다.

그 '좋음'은 아마 말하는 이가 과거의 기억에 잠겨 있어서 더욱 잘 드러날 수밖에 없는 표정의 섬세함, 목소리의 진정성에서 올 것이다. 또 우리가 그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 통의동의 대안공간 브레인팩토리 (www.brainfacto ry.org)에서 열리고 있는 《김희선 개인전―크리스털 들여다보기(Christal Seeing)》는 관람객에게 그런 '좋음'을 경험할 공감의 장을 마련한다.

한눈에 들어올 만큼 좁은 전시장에 들어서면 당신은 크리스털처럼 빛나는 유리 구체(具體) 아홉 개와 조우한다. 거친 시멘트 바닥과 반대로 매우 맑게 세공된 각각의 유리구슬에는 비디오 모니터가 들어있고, 당신은 그 장치를 통해 평범한 사람 36명의 얼굴과 목소리를 접할 것이다.

미디어 아티스트 김희선씨는 보통사람 36명에게“생 애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냐”고 물은 뒤, 인터뷰 동영상이 담긴 모니터를 유리공 아홉 개에 넣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클로즈업된 그들의 얼굴은 때로는 찡그리고 때로는 웃으며 무슨 말인가를 연신 이어간다. 성급한 관람객에게 모니터의 이미지와 사운드는 물과 기름이 겉돌 듯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인내심을 발휘하면 뻔해 보였던 사람의 얼굴이 '반짝' 빛나는 순간을, 웅얼거리던 목소리에 '자르르' 윤기가 흐르는 순간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발견의 순간이 작가 김희선씨의 미디어 아트 작품과 감상자가 상호 작용하는 순간이고, 낯선 타인과의 감정적 얽힘 또는 공감이 좋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작가는 다른 이들은 언제, 어떨 때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지 알고 싶다는,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한 의도에서 주변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인터뷰를 했다. 하지만 그 단순하고 소박한 의도가 평범함으로 뭉쳐 있는 36명으로 하여금 자기 개인사를 들춰 보고, 거기서 자기 생애 가장 빛나는 순간들을 세공해 낼 기회를 만들었다.

전시 제목이 《크리스털 들여다보기》인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텐데, 이 전시의 미덕은 관람객인 우리에게도 그런 기회를 제공한다는 데 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즉 '화양연화(花樣年華)'의 재발견. 전시는 5월 4일까지. (02)725-9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