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새벽 5시쯤 서울 은평구 북한산 자락의 한 대형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던 예순세 살 남모씨가 붙잡혔다. 연초부터 자꾸 물건이 없어지자 매장 주인들이 신고를 했고 경찰이 잠복했던 것이다. 경찰이 찾아간 남씨의 10평짜리 반지하 셋방과 계단은 훔친 등산복과 운동화, 휴지, 잡곡포대 등으로 가득 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남씨는 경찰에서 "30년간 해온 자동차 타이어 대리점이 IMF 때 망하고 가족도 모두 떠났다"며 "공허한 마음을 달래려 물건을 집에 쟁여뒀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단 한 건의 전과도 없었던 그는 환갑이 넘어 절도 전과 3범이 됐다.

범죄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늘고 일탈 사례도 비례해서 느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노인 범죄 증가속도는 노인 인구 증가속도를 일찌감치 추월했다. 범죄 양상이 점점 흉포해지고 있다는 점도 걱정스럽다. 노인에 의한 살인과 방화·강도 같은 범죄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 노인들이 과거에 비해 육체적으로는 건강해졌지만 정신적, 경제적으로는 훨씬 취약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래픽=오어진 기자 polpm@chosun.com

◆노인 1명 늘 때 노인 범죄는 3건씩 증가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 2006년 노인(61세 이상)에 의한 범죄는 총 8만2278건으로 전체 범죄 193만2729건의 4.2% 수준이었다. 60세 이상 인구는 전 인구의 13%. 이와 비교하면 노인들은 다른 연령대보다 범죄를 훨씬 덜 저지르는 것이다. 그러나 노인 범죄의 증가속도를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5년간 전국적으로 범죄 발생 건수가 16.7% 줄었다. 그런데 노인 범죄는 45%가 늘었다. 또 1996~2006년 60세 이상 노인이 전국적으로 46% 증가하는 동안 노인 범죄(61세 이상)는 무려 139%가 늘었다. 노인 한 명이 늘 때마다 범죄는 대략 3건씩 생기고 있다는 이야기다.

◆흉포해지는 노인 범죄

과거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노인 강력범도 나타나고 있다. 토지보상에 불만은 품은 70대 노인이 저지른 서울 숭례문 방화사건, '노인과 바다'사건으로 불리는 전남 보성 70대 어부의 연쇄살인 사건이 대표적이다. 작년 3월 부산 기장군에서 교통사고를 위장해 아내(68)를 살해한 뒤, 사체를 함께 묻었던 동창생(70)을 또 살해하고 암매장한 장본인도 70대 노인이었다.

지난 1996년 전국에 18명이었던 노인 살인범은 2005년 96명으로 5.3배가 늘었다. 그 10년간 전체 살인 사건은 1.5배 증가했을 뿐이다. 같은 기간 전체 강도범은 5098명에서 5084명으로 줄었지만, 노인 강도범은 6명에서 75명으로 늘었다. 노인 성폭행범과 방화범도 각각 4.7배, 7.4배가 늘었다.

◆노인들 육체는 강해지고 정신은 약해져

경찰대 행정학과 이웅혁 교수는 완력이 필요한 강도·성폭행이 증가한 것에 대해 "체력만 보자면 지금의 60대는 옛날 40~50대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목포대 사회복지학과 박민서 교수는 "반면 정신적으로는 각박해졌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과거 노인들은 연장자로 대우를 받았지만 요즘 노인들은 젊은 세대와 똑같이 생존경쟁을 벌여 거기서 밀려나면 퇴물 취급을 받는 동시에 빈곤으로 전락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70대의 절도가 급증했다는 점은, 노년 빈곤을 상징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4~2005년 400여 건 수준이던 70대 절도범죄는 지난해 846건으로 급증했다. 대형 마트에서 돼지고기나 소고기, 담배를 훔치는 그야말로 생계형 절도가 대부분이었다. 노인들도 금전 만능의 가치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고, 정서적 상실감과 소외감이 자칫 맞물리면 강력 범죄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숭례문 방화사건도 결국은 토지보상금이 발단이 됐고, 기장군 노인의 목표는 보험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