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소샤(扶桑社) 교과서의 역사 왜곡이 다시 불거진 2005년 4월 중국 전역에서 거센 반일시위가 벌어졌다. 먼저 선전에서 3000여명이 일본 백화점에 몰려가 "일본 제품을 사지 말자"고 외쳤다. 며칠 뒤 베이징과 광저우에서 인터넷·이메일·휴대전화로 연락을 주고받은 군중이 모였다. 시위는 그 다음주 상하이·항저우·톈진으로 확대됐다. 붉은 셔츠에 붉은 머리띠를 두른 시위대는 거리를 누비며 반일 구호를 소리쳤다.

▶1999년 5월 유고 베오그라드를 공습하던 나토 공군기가 중국대사관을 잘못 폭격해 수십명이 죽거나 다쳤다. 이튿날 베이징 미국대사관 앞에 모인 1만명이 돌과 콘크리트 조각을 던져 대사관 유리창과 승용차를 부쉈다. 청두·광저우·상하이에서도 격렬한 반미시위가 이어졌다. 클린턴 대통령은 중국에 두 차례 사과하고 3000만 달러 넘게 배상해야 했다.

▶지난 주말 중국 허페이·우한·선양·쿤밍 등에 있는 프랑스 할인매장 까르푸 앞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까르푸가 티베트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후원한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는 조건으로 중국 정부에 달라이 라마와 대화하라고 요구한 것도 중국인을 격분시켰다. 대형 오성홍기(五星紅旗)를 치켜든 시위대는 "까르푸 물건을 사지 말자" "프랑스는 입 닥쳐라"고 외쳤다.

▶중국의 애국적 시위 전통은 1919년 5·4 운동까지 거슬러 간다. 1차대전을 마무리짓는 파리강화회의에서 독일이 중국 산둥성에 갖고 있던 이권을 일본에 넘기기로 결정하자 중국 학생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천안문광장에 수천명이 모여 시작한 반일시위는 곧 중국 전역으로 확대됐다. 군벌 정부는 1000명 넘는 학생을 체포했지만 결국 노동자·상인까지 가세한 시위에 굴복해 파리강화회의 조인을 거부했다.

▶대중시위에 어느 나라보다 민감한 중국도 애국적 시위는 못 본 체한다. 대외적 문제가 발생할 땐 대중시위를 외교수단으로 곧잘 쓴다. 그러나 '시위 외교'가 힘을 발휘하는 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때다. 마침 미국 듀크대에 유학 간 중국 여학생이 티베트의 인권과 자유를 지지하는 연설을 했다가 중국인들로부터 '민족 반역자'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애국심에 불타는 중국 시위대의 함성과, "비이성적 민족주의는 진정한 애국이 아니다"는 여학생의 호소 중 어느 쪽이 더 많은 지지를 받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