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영 논설실장

공기업 민영화 논의를 듣고 있자면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민영화 방안을 놓고 정부 내에서 파워 게임을 벌이는데다, 무엇보다도 정부와 거대 기업들이 짜고 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힘 센 맹수들이 듬직한 먹잇감을 앞에 두고 자기들끼리만의 비밀 파티를 벌이는 분위기다. 보통 시민의 시선일랑 안중에도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우조선해양이다. 정부는 국내 재벌만을 대상으로 매각 작업을 진행 중이다.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포함해 7조원 이상 받겠다고 흥정을 시작했다.

인수 전쟁에 뛰어든 재벌은 작년부터 온갖 신경전을 전개하더니, 새 정권 출범 후엔 로비 공세의 조준점을 청와대 같은 권력 핵심권으로 접근시켜 가고 있다.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 매각을 총지휘하는 정부는 물론, 대주주인 산업은행(지분 31.3% 보유), 자산관리공사(19.1%)는 마치 자기들 마음대로 새 주인을 결정할 수 있는 듯 큰 착각을 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이 회사는 정부 소유가 아니다. 산업은행 소유도, 자산관리공사 소유도 아니다. 진짜 오너는 국민이며, 납세자들이다. 그런데도 진짜 주인에게 되돌려 주기는커녕 다른 주인을 찾겠다고 야단이다.

이 회사가 지금 같은 우량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최소한 두 번 납세자들에게 큰 부담을 안겼다. 창업자의 경영 실패와 유별난 노사 분규로 도산의 벼랑 끝에 몰렸던 20년 전에는 세금탕감 특혜도 부족해 특별 융자금 수천억원을 지원했다. 국가적인 위기도 아닌 일개 회사의 위기에 정부가 지폐 인쇄기를 급히 돌려 살려낸 희귀한 샘플이다.

9년 전 대우그룹 전체가 무너질 때도 한번 더 국민들에게 큰 빚을 졌다. 줄잡아 2조9000억원 안팎의 공적 자금(대우중공업 시절)이 투입된 덕분에 공중분해 위기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하지만 조선 업종에 제공된 각종 특혜를 제외하더라도 다 끊긴 회사 숨통을 두 번이나 이어준 긴급 수혈 자금의 원래 주인이 누구인지 잊어버린 모양이다. 정부나 산업은행, 자산관리공사는 납세자 돈을 대신 관리하는 대리인(agent)에 불과하다는 본분조차 망각하고 있다.

대우조선은 현재 재계 순위 28위(자산기준)의 중견 그룹이다. 한국 재계의 대표격인 전경련 회장을 배출한 그룹보다 더 큰 기업집단이다.

이렇게 컸다면 바다 속에 가라 앉을 뻔했던 시기에 구명보트를 보내주었던 은인에게 감사의 뜻부터 먼저 바쳐야 마땅하다. 이어 '원하시면 포스코, 한국전력, KT&G를 민영화할 때처럼 국민주 매각 방식으로 되돌려 드릴 수도 있고, 독립 그룹으로 홀로 서게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이라며 처분 방안을 물어봐야 하건만, 이런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에티켓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

어쩌면 대선 승리로 새 정부가 법적 대리인 신분을 확보했고, 경영을 잘할 새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라고 할지 모른다. 또 가능한 한 높은 가격에 팔아 국민 혈세를 한 푼이라도 더 회수하고, 그 돈을 중소기업 기술 개발에 사용한다면 더더욱 좋은 일이라며 그럴 듯한 명분과 논리를 대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IMF 사태 이후 공적 자금 덕에 살아난 회사 중에서 재벌에 매각했던 사례가 적지 않았다. 대한생명, 대우종합기계, 대우건설 등이 비싼 가격에 팔려가 세금 회수에 공헌했고, 재계의 파워 랭킹도 바뀌었다.

하지만 매각 잔치 후 뒷맛이 반드시 달콤했던 것은 아니다. 어느 재벌은 인수 과정에서 정치권에 엄청난 검은 돈을 뿌렸다가 정치인과 경영진이 구속됐고, 다른 재벌은 인수 후에도 분식 회계를 하고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또 다른 경우에는 인수한 회사의 자산을 매각, 인수할 때 무리하게 진 빚을 갚았다는 의혹을 남겼다. 큰 판돈이 걸린 M&A 판에서 일부 재벌이 씁쓸한 추억을 남긴 셈이다.

단지 대우조선의 경우에만 문제가 될 성싶지 않다. 엄청난 세금이 투입된 우리은행, 산업은행, 기업은행을 민영화할 때도 그렇고, 현대건설, 쌍용건설, 하이닉스반도체의 주식을 팔 때도 그렇다.

이를 모두 국민주 방식으로 민영화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공적 자금이 많이 들어간 회사일수록, 그리고 우량기업으로 탈바꿈한 회사일수록 납세자들의 주인 의식이 뜨겁다. 지금처럼 재벌들에 선물 돌리는 식으로 매각 파티가 진행된다면 다음 번 위기에서 어떤 납세자가 구명(救命)조끼 제공에 찬성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