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4일 나토 정상회담을 앞두고, 나토 가입을 추구하는 마케도니아그리스 간에 '국명(國名) 분쟁'이 다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1952년부터 나토 회원국인 그리스는 과거 마케도니아왕국이 고대 그리스 역사이기 때문에, 이를 연상케 하는 '마케도니아공화국'이라는 국명으로는 절대 가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나토 가입은 26개 기존 회원국 전체의 동의를 받아야 해, 그리스가 반대하면 마케도니아는 나토에 가입할 수 없다.

지난달 31일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인구 50만여 명)에서도 제일 붐비는 하지바실리예프 거리. 100여m에 걸친 벽을 온통 한 가지 벽보가 도배했다. 붉은 바탕에 노란색 태양이 그려진 마케도니아 국기 위에 '예드노 이메, 예드나 나치야, 마케도니아, 자세코가쉬(하나의 이름, 하나의 국가, 마케도니아여, 영원하라)!'라고 쓰여진 격문(檄文)이 었다. 10여 명의 고교생들은 기자에게 '마케도니아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에도 마케도니아일 뿐(Macedonia was, is, and will be Macedonia)!'이라는 영어 구호를 외쳤다.

지난달 31일 마케도니아 스코페의 하지바실리예프 거리의 벽에‘하나의 이름, 하나의 국가, 마케도니아여 영원하라’고 적힌 포스터들이 어지럽게 붙어 있다.

스코페의 다른 대사관들과는 달리, 그리스 대사관 밖은 방탄조끼와 AK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군인 8명이 지킨다. 10일 전, 이곳에선 500여 명이 "마케도니아 이름은 그리스와의 흥정 대상이 아니다"라며 격렬하게 시위를 했다. 대사관 벽에는 당시 시위대가 페인트로 갈겨 쓴 '마케도니아 예 마케도니아(마케도니아는 마케도니아일 뿐)' 구호가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러나 같은 날 이곳에서 남쪽으로 200㎞ 떨어진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 주의 소도시 펠라의 풍경은 완전히 정반대였다.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이 발흥한 진원지인 펠라에선 애초 400㎡ 면적의 동네 기념관 수준이었던 '알렉산더 박물관'을 연말까지 6000㎡로 확장하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20여 명의 인부들이 발목까지 자란 잡초를 제거하고 관람로를 보수했다.

마케도니아 대왕이 살았다는 이 곳의 한 터를 구경하던 한 주부(32)는 6세, 5세 된 두 자녀에게 "마케도니아왕국은 그리스 역사의 일부분이고 마케도니아 이름도 그리스의 것"이라고 가르쳤다. 펠라에서 새로 지어지는 주택들은 벽에 알렉산더 대왕의 두상(頭像)을 조각하는 것이 유행이다. 주도(州都)인 테살로니키 거리엔 "마케도니아 이름은 우리(그리스) 것"이라는 배너가 붙은 버스들이 돌아다닌다.

'마케도니아' 국명 분쟁으로, 그리스 국경도시 에브조니의 면세점 '헬레닉'을 지키는 양국 보안요원 사이도 애꿎게 서먹서먹해졌다. 그리스인 보안요원 토마스는 "마케도니아의 스코페로 가는 길"을 묻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일일이 "마케도니아가 아니라, FYROM(구유고마케도니아공화국)"이라고 일러준다. 그의 20년 지기 친구인 마케도니아인 필립은 "그리스 유적지 펠라"를 묻는 이들에게 꼬박꼬박 "마케도니아의 유적지 펠라"라고 답한다.

마케도니아의 역사연구가 다니엘 미조(Mizo·35)는 "한국이 예전부터 점유해 온 독도를 일본이 갑자기 '다케시마(竹島)'라고만 부르라고 하면 받아들이겠느냐"며, "마케도니아는 고대부터 우리가 써 온 이름"이라고 말했다. 반면, 그리스 펠라의 '알렉산더 박물관' 큐레이터인 코스타스 조라(Zoras·41)는 "고구려가 중국까지 영토를 확장했다고 해서, 중국이 고구려를 자기네 것이라고 하면 한국인은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