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티베트 수도 라싸에서 승려들이 반중(反中) 시위에 나섰다. 주민까지 가세한 대규모 저항을 현지 당국이 진압하지 못하자 베이징 정부는 인접한 구이저우성(省) 당서기 겸 군사령관 후진타오를 티베트 당서기로 보냈다. 후는 군복을 입은 채 1년여에 걸쳐 시위대를 강력하게 진압했다. 40대 중반이던 후는 덩샤오핑의 눈에 띄었고 1992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발탁돼 중앙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은 민족 갈등이 큰 골칫거리다. 한족(漢族)이 92%로 압도적이지만, 역사와 문화가 다른 나머지 민족들이 영토 3분의 2에 흩어져 있어 잠재적인 불안 요소다. 그 중에서도 서쪽에 넓게 자리잡은 신장(新疆) 위구르와 시짱(西藏) 티베트는 분리운동 세력이 강력해 화약고와 같다.

▶이슬람 신자가 많은 위구르와 불교 정교일치(政敎一致) 사회인 티베트는 청나라 때 중국에 편입됐다. 그러나 워낙 멀리 떨어져 있고 지리도 험해 사실상 독립국가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19세기 중반 아편전쟁 이후 중국이 정치적 어려움에 빠지자 그 통제에서 벗어났다. 1949년 중국 공산당이 베이징을 장악하면서 상황은 돌변했다. 우루무치와 라싸에 탱크를 탄 인민해방군이 진주했고, 중앙에서 관리가 내려와 강력한 통합정책을 펼쳤다. 위구르인과 티베트인은 망명정부와 테러조직을 중심으로 끈질기게 맞섰다.

▶라싸에서 20년 만에 다시 대규모 유혈시위가 발생했다. 수천 명이 사망했던 1959년 '독립 봉기' 49주년인 10일 승려들의 가두시위로 시작돼 점점 격화되고 있다. 때맞춰 인도에서는 티베트인들이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를 출발해 티베트까지 걸어가는 대장정 시위에 들어갔다. 신장에선 7일 위구르인 4명이 베이징행 항공기를 납치하려다 체포됐다.

▶한동안 잠잠하던 소수민족 저항이 다시 불붙고 있는 것은 8월 베이징올림픽 때문이다. 세계 이목이 중국에 집중되는 시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이다. 올림픽을 중국 부흥의 선전장으로 삼으려는 중국 정부는 즉각 '질서 회복을 위한 인민전쟁'을 선포했다. 국제사회 일각에선 중국 정부의 가혹한 탄압을 들어 베이징올림픽 보이콧을 주장한다. 정치와 스포츠, 소수민족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는 상황이다. 그제 집권 2기를 시작한 후진타오 주석이 출세의 발판이었던 티베트 사태 재발에 어떻게 대처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