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숭례문을 다시 짓는데 국민성금도 받았으면 좋겠다고 한 얘기는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나중에 숭례문이 복원된 뒤에는 자발적인 국민 성금으로 다시 세워졌다는 사실이 뿌듯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숭례문이 불타서 붕괴된 바로 다음 날, 모두가 황망한 마음과 분노를 어쩌지 못하고 있는데 대통령 당선자가 모금 얘기부터 불쑥 꺼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당선자는 좋은 뜻으로 한 얘기였지만, 많은 사람들을 화나게 만들고 말았다.

그날 이 당선자가 "성금으로 하면 어떠냐"는 말을 꺼낸 것은 인수위 회의 자리였다. 누구나 번쩍 스친 생각에 집착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잘못된 아이디어라면 주변에서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인수위 회의엔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 모두가 성금 모금 이야기가 몰고 올 파문을 예상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한두 명은 속으로 "어?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용했다. 이 당선자의 말을 받아 이경숙 인수위원장은 "방금 말씀하셨듯이 국민 한 명 한 명의 정성으로 복원해서 마음을 추스르는, 그리고 소망을 다시 깨우는 (당선자의 국민 성금 모금)제안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공개된 자리여서 곤란했다면 회의 뒤에 반대 의견을 전할 수도 있었다. 그런 사람도 없었던 것 같다. 인수위는 곧장 "새 정부 출범 이후 모금운동을 전개하겠다"는 정책 발표로 직행했다. 결국 하루 만에 이경숙 위원장은 "죄송하다"고 분노한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했다.

이 당선자는 엊그제 저녁 8시에 새 정부 초대 내각 명단을 발표했다. 새 출발 하는 정부의 첫 장관들이 그 시간에 모여 국민에게 인사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무리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여야 협상을 밤까지 보고 내일 아침에 하는 게 낫다"는 반대 의견이 내부에서 나왔어야 한다. 일이 다 끝난 다음에 한나라당에선 걱정하는 소리만 나오고 있다.

이 당선자는 장관 후보자 발표도 안 하고서 이들을 모아 워크숍부터 하겠다고 했다가 곧 취소하기도 했다. 누군가 강하게 반대했으면 처음부터 벌어질 일도 아니었다. 아무리 청와대 비서들이라고 해도 서울과 영남 출신 일색으로 만들어버린 것도 내부에서 견제가 있어야 했다. 당선자가 출신교 행사에 한 달도 안 된 사이 두 번이나, 그것도 단과대학 행사장까지 찾아간 것은 참모들이 길을 막아서라도 못 가게 했어야 했다.

이 당선자 앞에서 "NO"가 사라진 것은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다. 지지율이 50%를 넘으면서 주위에서 반대 의견이 급속히 사라졌다고 한다. 상대의 의혹 공세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들이 나온 것도 이런 내부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경선에서 당선자가 지역 투표에서 패하고 여론조사로 승리하는 바람에 참모들은 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고개도 못 드는 데 "NO"는 정말 쉽지 않다.

대선까지 사상 최대 표차로 승리한 이후 당선자 주변의 분위기가 어떨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지금은 당선자가 청와대 비서실, 장관, 차관, 국회의원 공천, 공기업 사장·감사 등 수많은 자리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는 마당이다. 웬만한 사람 아니면 "NO" 하면서 나서기 어렵다. 경선 때 그나마 반대 의견을 내던 원로그룹도 이제 현장에선 한 발 물러서 있다.

이 당선자를 관찰해온 사람들은 당선자가 '충성심'을 사람 선택의 제1 요건으로 생각한다고 본다. 충성 중에 쉬운 것이 'YES 충성'이다. 윗사람이 시키면 그게 뭐든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능력이 모자라거나, 아니면 속으로 다른 사욕(私慾)을 감추고 있다. 대통령들은 이런 사람들이 결국 화(禍)를 부른다는 것을 나중에야 안다.

엊그제 당선자를 중심으로 도열한 새 정부 장관들의 면면을 보면서 과연 이 중에 누가 대통령에게 "NO"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자동차는 브레이크가 듣지 않으면 벽에 충돌한 다음에야 멈춘다. 속도가 빠를수록 피해는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