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길거리에 실업자가 넘쳐날 때 세계의 국가 수반(首班)들은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을까? 오는 21~22일 '리더십과 변화'를 주제로 열리는 '제2회 아시안 리더십 콘퍼런스'에서는 세계적인 금융 위기와 잠재성장률 하락 등 난관에 직면한 새 정부와 우리 기업들이 귀감으로 삼을 만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21일 오전 세션에서는 고촉통(吳作棟·67·1990~2004년 총리 재임) 전 싱가포르 총리, 에스코 아호(54·1991 ~95년 재임) 전 핀란드 총리, 폴 키팅(64·1991~1996년 재임) 전 호주 총리, 제니 시플리(56·1997~99년 재임) 전 뉴질랜드 총리 등 4명의 전직 총리들이 한자리에서 열띤 토론을 벌인다. 이들 모두가 개혁의 기수로, 특유의 리더십으로 국가 위기를 극복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고촉통 전 싱가포르 총리는 지금도 싱가포르 내각 내 서열 2위인 선임장관으로 재직할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고 전 총리는 특히 2000년대 들어 이라크전쟁과 중국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여파로 싱가포르 경제가 최악으로 치닫자 과감하게 자신이 1990년대 주도해온 경제 성장전략이 한계에 왔음을 인정하고 개혁을 단행했다. 그는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려면 10년 이내에 경제구조조정을 마쳐야 한다"고 강조하고, 한국·미국 등 전 세계 주요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수출시장을 다양화했다. 또 중국의 강력한 경쟁에 부딪힌 전자산업 의존도를 줄이고 석유화학과 제약, 생명공학산업을 육성하는 계획을 마련했다.

37세에 유럽 최연소 총리로 등장한 에스코 아호 전 핀란드 총리는 1991년 취임하자마자 최악의 경제 위기에 직면했다. 소련의 붕괴로 수출 통로가 막히자 국내총생산이 급감했고 실업률은 치솟았다. 30대 젊은 총리가 제안한 건 고강도의 사회·경제적 구조조정. 비대해진 복지 예산을 삭감하는 동시에 EU(유럽연합) 가입을 통해 유럽 수출시장을 뚫었다. 그는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노키아 같은 세계적 휴대폰 기업의 성장 기반을 마련해줬다.

뉴질랜드 최초의 여성 총리인 제니 시플리 전 총리는 복지병을 앓던 뉴질랜드에 '작은 정부' 혁명을 일으켰다. 1990~1993년 사회복지부·보건부장관 시절에는 복지 예산을 대폭 줄이고 공무원 감축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또 연금 수급 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올려 연금에 대한 세금 부담을 크게 줄였다. 이로 인해 '가장 미움 받는 장관'이란 별명까지 얻었지만 연금 재정은 흑자로 돌아섰고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60세 이상의 고령인구도 증가했다.

노동당 출신인 폴 키팅 전 호주 총리는 자신의 최대 지지 기반인 노조에 치명타를 입히면서까지 노동·시장 개혁을 주도해 유례없는 호황을 이끈 '호주 개혁의 기수'다. 1983∼1996년 재무장관과 총리로 재직하는 동안 노조를 설득해 임금 인상을 물가상승률 이하로 억제했고, 환율·관세·금융 등 경제 전반에 미친 규제의 끈을 풀었다. 또한 28개 중앙부처를 16개로 통합해 효율을 극대화하는 등 정부조직에까지 칼을 들이댔다.

그가 이끈 혁신으로 1990~2000년 10년간 호주 국민의 실질소득은 23%로 증가했고 이는 최저 실업률과 일자리 창출(170만개)로까지 이어졌다. 호주 국민들이 작년 11월 총선에서 키팅 전 총리 시절을 떠올리며 노동당의 손을 들어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