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탄 숭례문의 잔해가 쓰레기 폐기장에 버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문화재청이 화재 현장에서 수거한 잔해들을 서울 수색동의 한 폐기물 처리장에 마구 버린 것으로 확인됐다. 숭례문 화재 현장에 쌓여 있던 잔해들의 문화적 가치를 정밀 확인하지 않은 채 중장비를 이용해 일반 쓰레기처럼 마구 버린 것이다.

14일 오전 기자가 이 쓰레기 폐기장을 찾았을 때는 포크레인 등 중장비들이 화재 현장에서 수거한 잔해를 대부분 정리한 상태였다. 쓰레기 처리업체인 M사의 현장 직원들은 "13일 저녁 2.5톤 트럭 3대 분량의 화재 잔해가 들어왔다. 대부분은 이미 경기도 파주의 2차 폐기물 처리장으로 넘어갔다"면서 "그곳에서는 곧 쓰레기 매립지에 매립할 것이다"고 증언했다.

타버린 잔해 일부는 목재, 시멘트, 돌멩이 등 건축 쓰레기와 함께 섞여 있었다. 길이가 1m 가까이 되는 목재 등 크기가 비교적 큰 부재들도 눈에 띄었다. 큰 잔해들은 한쪽에 따로 쌓여 있었고, 나머지 작은 잔해들은 포크레인이 마구 헤집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것도 꽤 있었다.

600년 역사를 간직한 문화재의 흔적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국보 1호의 일부였다는 자취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무늬가 이렇게 선명한데…' 서울 은평구 수색동 쓰레기폐기장에 버려진 숭례문의 기왓장. 기와의 무늬가 선명하다.

건축 중인 아파트 단지 사이에 위치한 쓰레기 폐기장에는 건축 자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직원들은 처리작업 도중 먼지가 나지 않도록 물을 계속 뿌려댔다. 화재 현장에서 잔뜩 물을 먹은 기와가 또 물에 젖었다.

기자가 쓰레기더미를 헤집자 검게 탄 기왓장이 금방 손에 잡혔다. 잔해를 찾으려고 깊이 파헤칠 필요도 없었다. 기와 중 불에 타지 않은 부분은 전통 문양이 아직도 선명했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M사 관계자는 "우리는 중간 업체로부터 전달받았을 뿐이다. 하루에 수백 대의 쓰레기가 들어오는데, 숭례문 화재 잔해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밝혔다. 직원들은 파문이 확산되는 걸 꺼리는지 취재진의 접근을 최대한 막으려고 애썼다.

문화재청은 숭례문 현장에서도 전문가들의 현장감식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포크레인으로 잔해를 수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당국은 책임을 회피하는데 급급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숭례문 화재 잔해 폐기여부는 우리와 전혀 관계없다. 우리는 기술 지도와 예산 지원만 할 뿐이다. 관할 중구청에서 결정한 문제다"고 말했다. 중구청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직원들이 다 현장에 나가 있어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숭례문 화재 잔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문화재 전문가들의 검증을 거쳤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국보 1호 숭례문 방화와 잔해 처리 과정은 당국의 문화재 보존에 관한 인식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현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