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람과 물체의 겉만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죠. 하지만 꽃과 나무, 사물의 내면 실루엣을 드러내는 엑스레이 영상은 맨눈으로 볼 수 없는 또 다른 자연의 세계와 감춰진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연세대 의대 영동세브란스 병원 영상의학과(옛 진단방사선과) 정태섭(鄭台燮·54) 교수는 방사선 진단 장비로 촬영한 의료영상을 예술 작품화해 온 별난 의사다. 뇌·척추 영상의학을 전공한 그는 엑스레이·CT·MRI 등으로 촬영한 사진 중 재미있거나 희한한 사진들을 언론에 공개하며 방사선 영상을 '대중화'해 왔다. 2월 밸런타인 데이 시즌에는 환자들의 엑스레이 사진 중 환부가 '하트' 모양으로 된 것을 모아 학회지와 신문에 게재하기도 했다. 그가 오는 19일부터 경기도 양평군 '닥터박 갤러리'에서 의료영상 작품 8점을 모아 'X-선 영상으로 본 또 다른 내면의 예술 세계'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연다.

정 교수의 '작품'에는 엑스레이를 통해 나타난 손의 뼈 마디가 등장한다. 해바라기·단풍잎·장미 등 화려한 꽃도 엑스레이로 촬영해 '골격 사진'으로 만들었다.

그는 "의료영상이라고 하면 겁부터 내기 쉬울지 모르지만, 내 작품들을 보면 의학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암 덩어리가 '하트' 모양으로 생긴 것을 볼 때는 삶의 아이러니를 느껴요. 한편으로는 하트 모양으로 생긴 종양은 눈에 확 띄어 쉽게 발견했으니 고맙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의 연구실에는 엑스레이로 찍은 가족 사진이 걸려있다. 아내와 딸·아들 4명이 '해골'로 서 있다. 그는 1995년과 2002년 두 번 'X선 가족 사진'을 찍었다. "두 번째 찍은 것을 보니 아이들 두개골이 많이 커졌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너희들 머리 많이 컸구나'라고 말해줬죠(웃음)."

그는 방사선 사진 이외의 분야에서도 과학 대중화 운동을 다양하게 펼쳐왔다. 중학생 시절부터 망원경으로 별을 봤던 그는 1990년대 초반, 병원 야외 주차장에 천체 망원경을 갖다 놓고 동네 아이, 어린이 환자들과 함께 별을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환자와 주민을 위한 별 밤 잔치'. 올해(4월 9일 예정)가 벌써 11회째이다. 이 잔칫날이면 '별에 굶주린 도시 아이들' 1000여명이 몰려든다. 덕분에 정 교수는 어린이들 사이에서 '망원경 아저씨'로도 불린다. 잔치 규모가 커지자 이화여대 천체 관측 동아리 '폴라리스' 회원들까지 자원 봉사자로 참여했다.

정 교수는 지난해 7월까지 2년 2개월 동안 MBC 어린이 과학프로그램 '아하! 그렇구나'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비록 채택되지는 못했지만, 새 지폐 도안에 조선의 과학자 장영실 얼굴을 올리려는 운동의 추진위원장을 맡아, 과학자 2257명의 서명을 받아내기도 했다.

이 의사는 과학 대중화에 그토록 열정을 쏟는 까닭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질병 치료는 과학이 바탕이며 의사들도 생명과학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과학자입니다. 이공계가 살아야 국부가 창출되고 나라가 발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