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압승은 일찌감치 예고됐다. 작년 9월 북한 핵실험 이후 1년4개월간 줄곧 지켜온 여론조사 1위가 19일 표심(票心)에서도 최종 확인됐다.

노무현 정권의 실정(失政)과 국정파탄을 심판하겠다는 민심, 김대중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진 10년 '좌파정권'을 "이번엔 바꿔야 한다"는 대다수 국민의 열망이 그에게 쏠렸기 때문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선과 본선을 거치면서 대선판이 요동치고 BBK 사건을 비롯한 숱한 악재(惡材)가 그를 위협했지만 잠시 그 때뿐이었다. 이 당선자를 이탈했던 표는 다시 결집했고, 한나라당의 50% 안팎 지지율도 1년여 동안 지속됐다.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은 "혹독한 네거티브(음해 비방) 공세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이 당선자를 믿어준 것은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을 보여준 것"이라며 "국민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샐러리맨 신화와 청계천 성공 스토리를 바탕으로 이 당선자가 내세운 '일하는 경제 대통령론'은 다른 후보들이 제기한 모든 담론(談論)을 선거기간 내내 압도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민병두 전략기획본부장은 "우리는 정치개혁과 남북관계 이슈에서 리더십을 구축해 왔으나 경제 전선(戰線)에서 지도자를 키워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경제를 살리고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이끌 대통령을 원하는 국민들의 욕구가 워낙 강했다"고 했다.

선거 사흘 전 "BBK를 설립했다"는 이 당선자의 육성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된 후 대통합민주신당은 이 당선자의 사퇴를 촉구하며 도덕성을 맹공했으나 반노(反盧)정서와 경제 대통령론의 두터운 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정동영 신당 후보와 이회창 무소속 후보측이 선거막판에 판세를 뒤집을 수 있을 것처럼 선전(宣傳)한 것이 바람을 일으키기보다는 오히려 이 당선자 지지자들에게 경각심을 준 측면이 있다는 게 선거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결과적으로 BBK 사건 자체가 이 당선자의 득표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이다.

이 당선자가 압승한 또 다른 이유는 범여권이 후보단일화에 실패하면서 과거 김대중 대통령 지지표와 노무현 대통령 지지표가 사방으로 분산됐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이 역대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한 데는 낙담한 일부 범여권 성향의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가지 않은 것도 일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대다수 보수 우파 유권자들은 뒤늦게 뛰어든 이회창 후보 대신 제1야당의 정통 후보인 이명박 당선자에게 표를 몰아 주었다. 두 사람의 득표율을 합치면 과반을 훨씬 넘는 64%에 이르렀다.

이 당선자는 2위 정동영 후보와 531만표의 차를 보였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실시 이후 가장 많은 표차다. 노무현 대통령은 2위와 57만표, 김대중 대통령은 39만표, 김영삼 대통령은 193만표, 노태우 대통령은 194만표 차이였다.

이 당선자는 호남을 제외한 전국에서 득표율 1위를 기록했다. 충청권에서도 심대평 국민중심당 대표와 연대한 이회창 후보를 앞섰다. 그러나 이 당선자는 호남에서 10% 벽을 뛰어 넘지 못했다. 정동영 후보가 호남에서 막판에 급속하게 표를 결집시키며 80% 안팎의 득표율을 올렸다. 문국현 후보 등을 합치면 범여권 후보들이 호남에서 얻은 득표율은 90%를 육박한다. 반대로 대구·경북(TK)에서는 이 당선자가 70%를 넘나들었으며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까지 합치면 TK지역은 우파 후보들에게 역시 90%에 육박하는 지지를 보냈다. 결국 이번 대선에서도 영·호남 간의 지역정서가 해소되지 못한 것이다. 이 당선자는 그러나 세대별로는 비교적 고른 지지를 얻은 것으로 분석된다.

유권자들은 크게 보면 과거에 대한 판단을 위주로 '회고(回顧)투표'를 하거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중심으로 '전망(展望)투표'를 한다. 박형준 한나라당 대변인은 "유권자들의 이런 두 가지 투표행태에서 모두 우위를 차지하는 후보는 이 당선자뿐이었다"고 했다. 다만 유권자들 중엔 이 당선자의 도덕성에 일부 흠결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를 선택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런 점에서 이 당선자 지지자들의 충성도는 이 당선자가 앞으로 국정을 어떻게 이끌어 가느냐에 따라 상당부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