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다시 한반도를 점령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계속
아시아에서 최고 경제대국이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그러한 불안감이 이웃에서 착실한 경제성장을 계속하는 한국과 중국에 대한 질투로 변화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여수 77표, 모로코 탕헤르 63표. 11월 27일 새벽,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박람회국제사무국(BIE) 총회에서 2012년 여수엑스포 개최가 결정됐다. 지난 여름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에 입후보한 평창이 러시아의 소치에 패배한 만큼 이번 결정은 일본인인 나로서도 몹시 기쁜 사건이다.

나는 1994년부터 1년간 일본 중부지방에 있는 아이치(愛知)현 세토(瀨戶)시의 통신국에 근무한 적이 있다. 인구는 여수시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3만명. 도자기로 유명한, 여수와 비슷한 풍광명미(風光明媚·자연의 경치가 맑고 아름다움)한 지방 도시다. 여기에서 지난 2005년에 엑스포가 열렸다. 내가 근무한 것은 그 10년도 전의 일이었지만 엑스포 유치 당시 시청은 유치활동용 포스터를 여기저기 붙이고 도쿄까지 나와 정부에 지원을 구하기도 하는 등 열심히 유치활동을 했다고 한다. 이번에 여수시의 노고도 보통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수엑스포 유치 과정을 취재하는 중에 괴로운 경험도 했다. ‘여수엑스포’ 유치를 둘러싸고 한·일 관계가 삐걱거리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여수엑스포 지지를 한국 정부에 전한 것은 투표 불과 1주일 전. 싱가포르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석상에서였다. 동아시아 중에서 가장 늦은 지지 표명이었다. 왜 이렇게 늦어진 건가.

관계자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본 정부에는 당초 탕헤르를 지지하는 안이 있었다고 한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지만 아마 일본 정부가 2008년에 개최할 제4회 도쿄아프리카개발회의(TICAD4)를 염두에 둔 안이었을 것이다. 이 회의는 1993년부터 5년마다 열리고 있는 것으로, 일본의 아프리카 외교의 상징 같은 존재다. 아프리카 각국이 지지하는 모로코에 투표하면 틀림없이 TICAD4도 성공한다, 아마 일본 정부는 이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본 외교에 있어 아시아와 아프리카 어느 쪽이 중요한가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이 아시아일 것이다. 일본 외무성에서 아시아를 담당하는 지역과가 다섯 개 있는 것에 비해 아프리카를 담당하는 지역과는 두 개밖에 없는 것만 봐도 명백하다. 오부치 게이조 총리처럼 “이웃나라와의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교린(交隣)’이라는 외교방침을 부르짖은 리더도 있었다.

다른 이유로 여수엑스포 테마가 ‘해양’인 것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엑스포에서 니혼카이(日本海·동해의 일본식 표현)를 동해라고 부르고,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표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전시가 잇따르면 어떡하나?” 일본 정부 안에는 그렇게 걱정하는 소리도 묻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독도의 영유권 문제는 전후 줄곧 계속되고 있는 것이고, 두 나라는 1998년 10월 과거를 총괄해서 미래 지향을 명시한 ‘한·일 공동선언’을 낸 바 있다.

그럼에도 왜 이번에는 잘 안 된 것인가? 사견을 말한다면 “한·일 쌍방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에서 일하는 지인들은 “최근 일본 외교는 여유가 없다”고 탄식한다. 나도 동감이다. 오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말하면 옛날 일본 외교는 이른바 ‘부자(富者)는 싸우지 않는다’는 외교였다.

일찍이 일본 정부는 “세계 제2위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대국”이라는 자부심과 그 경제력을 중요한 외교 카드로 살린다는 전략을 취했다. 때문에 상대방의 주장에 비교적 관용적 외교를 전개해왔다. “손해를 보고 이득을 취하라”는 속담대로 “상대방에게 이해를 주는 것이 일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것과 연결된다”는 사고방식이다. 구미(歐美)가 싫어하는 미안먀와 이란에조차 적극적으로 경제협력을 해왔다. 물론 아시아 각국에 대해서는 과거의 전쟁 책임에 대해 속죄하려는 분위기도 강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유가 없다. 2006년 가을에 반기문씨가 유엔사무총장에 당선됐을 때도 그랬다. 나는 미국의 볼튼 전 유엔대사와는 달리 최종적으로 일본이 반기문씨 지지로 돌아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중에 ‘반기문 지지’를 싫어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반기문씨가 당선되기 반 년쯤 전 일본 외무성 고위 관료인 친구가 동료 고위 관료 10명 정도와 함께 유엔사무총장 선거를 화제 삼았을 때의 에피소드를 말해준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지한파로 “반씨를 지지하면 어떨까”하고 제안했다. 그러나 동의한 것은 아시아 관계 일을 하고 있던 고위 관료뿐. 그밖의 관료는 “일본을 공격만 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을 왜 도와주는가” “반씨 지지라니 당치도 않다”고 입을 모아 반대했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에는 일본 정계의 우경화가 고려돼야 한다. 후쿠다 정권이 출범해서 이 경향에 제동이 걸렸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의 정계에는 “과거의 전쟁 책임에 대해 언제까지나 사죄할 필요는 없다”고 외치는 사람이 상당수 늘었다. 정치가의 발언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일본도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보다 심각한 것은 관료들에게 이 공기가 꽤 전염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외무성 고위 관료들의 대화도 그러했고, 2006년 4월 독도 주변에서 일본의 측량조사를 둘러싸고 한·일 관계가 긴장됐을 때도 그랬다. 당시 총리관저 기자단에 속해 있던 내 주위에는 “한국 측이 일본의 측량선을 침몰시키는 게 아닌가”라는 정보도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 일본 정부 고위 관료로부터 믿기지 않는 말을 들었다. “침몰시킬 거라면 침몰시키는 게 좋다. 전 세계가 한국의 잘못된 행위를 알게 되기 때문에 좋지 않은가.”

일본은 1990년대에 거품이 붕괴하면서 세계 속의 지위가 저하됐다. 일본 국내에는 “우리도 유럽의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처럼 석양을 받아들여(국운이 기울었다는 뜻) 그에 상응하는 생활을 즐기면 좋지 않은가”라는 소리도 있다. 하지만 다수의 여론은 “한 번 더 과거의 세력을 되찾자”는 소리를 지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과거의 세력’이란 노무현 대통령이 걱정하는 ‘대일본제국시대’의 것은 아니다. 일본인은 1970년대에 경험한 고도성장시대의 재현을 바라고 있는 거다. 일본인들은 “노후 연금이 제대로 지불될까”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품고 있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다시 한반도를 점령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계속 아시아에서 최고 경제대국이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그러한 불안감이 이웃에서 착실한 경제성장을 계속하는 한국과 중국에 대한 질투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질투’를 잘 컨트롤해서 ‘건전한 경쟁심’으로 바꿔놓는 게 정치인의 일일 것이다. 정치인이 이상해지면 관료가 제동을 걸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오늘의 일본 정치인에게도 관료에게도 ‘질투’가 만연해 있는 것 같다.

한편 한국사람들에게도 지적하고 싶은 게 있다. 지난 11월 초 나는 아사히(朝日)신문의 일원으로서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 인터뷰에 배석할 기회를 얻었다. 가까이에서 본 대통령은 표정도 어조도 온후하고 대통령으로서의 품격이 감돌았다.

다만 그 발언을 보면 솔직히 말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것도 있었다. “일본 대부분의 우파 정치인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싶다고 주장한다”면서 일본에 식민지시대로의 회귀를 추구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우파 정치인들에게 그렇게까지 과격한 목표가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대통령은 비공식 석상에서도 이러한 과격한 발언을 반복하고 있다고 들었다. 왜 일본인을 이렇게 몰아세우는 발언을 하는 건가.

지난 10월 말 일본을 방문한 김대중씨가 일전에 발표된 납치사건 보고서와 관련해 “얼마나 일본에 실망했는지”라고 말한 적도 있다. 한·일 양국 정부에 대해 “진상 규명의 책임이 있다”고도 주장했다. 확실히 일본은 한국과 정치적으로 결말을 짓는 일을 반복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왜 자신의 대통령 재직 중에 진상 규명을 철저히 하지 않았던가. 이런 사건은 시간이 흐를수록 관계자들이 노령화돼 해결이 어렵다. 마치무라 관방장관은 “왜 대통령 재직 시 말하지 않았는가”라고 말해 불쾌감을 나타냈다. 김대중씨의 발언이 여수엑스포에서 지지를 망설이는 일본 정부의 태도를 더 완고하게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여수엑스포는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독도문제에 대해 한국 측의 주장을 크게 전개할 기회를 얻고, 동시에 일본에도 반론의 기회를 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나뿐일까?  ▒

마키노 요시히로 | 1965년 일본 아이치(愛知)현 출생. 와세다(早稻田)대 법학부 졸업. 1991년 아사히신문 입사, 1995년 정치부, 1999년 9월~2000년 9월 연세대 유학, 2007년 1월부터 서울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