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노무현 대통령의 ‘삼성 특별검사’ 수용 결정으로 주춤거리고 있다. 수사 범위와 시간에 제한이 걸리면서 수사를 본격화하기도, 아예 손을 놓기도 어려운 어정쩡한 상황에 빠진 것이다.

◆수사범위·시간 제한… 여론도 부담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을 수사 중인 특별수사·감찰본부는 28일 “특검의 원활한 수사 진행을 위해 필요한 범위에 국한해서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본류(本流)는 손대지 않은 채, 특검이 수사에 착수할 때까지 기초부분만 수사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런 결정에는 “이중·삼중의 수사가 되지 않도록 하라”는 노 대통령의 지시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특수본부 김수남 차장검사는 이날 “(이중·삼중 수사불가) 지시를 받은 적도 없다”면서도, “소환 대상자가 (특수본부와 특검에) 이중으로 불려와 논란이 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김 변호사는 가장 중요한 핵심 참고인이니까… 그건 해야지요”라고 답했다. 나중에 특검에 소환될 것이 확실하더라도 핵심 인사에 대한 소환은 어쩔 수 없다는 뜻으로, 노 대통령의 발언이 일정 부분 ‘가이드 라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한 대답이다.

시간 제한도 장애물이다. 다음달 4일 특검법안이 발효되면 15일 안에 특검이 임명된다. 특수본부가 수사할 수 있는 기간이 20일가량만 남은 셈이다.

한 현직 검사는 “검찰 내부에서는 총장까지 수사 대상이 된 상황에서 특검 도입이 차라리 잘된 일이란 의견도 많다”며 “더욱이 삼성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그에 따른 여론의 압박도 검찰로서는 무시하기 힘든 부담”이라고 말했다.

◆“에버랜드 사건은 매듭 짓자” 의견도

하지만 검찰 일각에서는 “특검 도입은 어차피 예고돼 있었다. 검사만 15명인 대형 수사팀을 꾸려 놓고는 기초수사만 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움츠러드는 것”이라는 불만도 나온다. 기왕에 칼을 뽑았으니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아야 체면이 선다는 것이다.

한 특수통 검사는 “적어도 에버랜드 편법증여 사건에서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검찰이 5~6년간 수사해 이미 기소된 허태학·박노빈 전 사장과 나머지 삼성 경영진 사이의 공모관계 판단만 남았다는 것이다. 그는 “에버랜드 사건은 이번에 매듭짓고, 새로 제기된 ▲비자금 조성 ▲분식회계 ▲미술품 구입 의혹 등은 압수수색과 기초조사만 해서 특검에 넘기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두번째 참고인 조사를 받은 김용철 변호사는 밤 12시20분쯤 귀가하면서 대통령의 ‘이중·삼중 수사 불가’ 지시와 관련, “필요하다면 열 번이라도 해야 한다. 왜 삼성에 대해서만 두번·세번 조사하는 것을 걱정하는지 모르겠다”며 “그게 대통령 본인에 대한 걱정인지 삼성에 대한 걱정인지 참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이제까지 검찰에서 하고 싶은 말의 7분의 1 정도 한 것 같다”고도 말했다.

한편, 대법원은 김 변호사가 “삼성이 부산지법 파산부 사무관을 매수해 분식회계 서류를 빼낸 뒤 해운대에서 불태워 없앴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 진상파악에 나섰다.